제 목 :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 설교 2012년 8월 30일 | 조회수 : 1981 |
작성자 : 레베카 | 작성일 : 2012-12-15 |
2012. 8. 30 (목)
사 53:1-7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시고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셨으며 좁은 문, 좁은 길을 상징합니다. 본문에 있는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는 형벌의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군중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죄 때문에 심판받고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대신 채찍에 맞고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위해서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1-2).
본문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 말입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어서 예수님께 오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는 현장에 있는 것처럼 에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고운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우리가 흠모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철거민촌에서 사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꼐서 자라셨던 나사렛은 너무나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가문과 외모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나셨지만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었고 인정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보면 호감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자 같다고 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도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겼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것보다 질병과 가까웠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케이복지사들은 어릴때부터 간병을 많이 해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전승에 의하면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예수님께서 동생들을 먹여 살렸다고 합니다. 가난이 생활이고 질병속에서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밑바닥이었던 나사렛동네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고 제자들을 세우신 후에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었고 때로는 끼니조차 거르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성령이 충만하면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상을 이미 다 받았습니다. 복음이 쇠퇴하고 약해지는 요인이 여기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다 수용하고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포용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TV에서 방영했던 허준을 보면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어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병자들을 고칩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사 5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때 제자들도 예수님을 놔두고 다 흩어졌습니다. 고난을 받고 채찍에 맞으시는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이사야도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여러분도 본문의 말씀안에 있는 ‘우리’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는 단 한번도 변호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욕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따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속이 상하면 말을 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기분나빠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마음도 없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하나님께 호소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질병과 슬픔, 스트레스, 고민으로 꽉 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여러분이 제일 힘들고 어려울때는 이 말씀을 외우고 선포하십시오 예수님은 찔리셨고 상하시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채찍에 맞고 찔린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고 징계를 받고 상하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짓지도 않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재판을 받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누구의 허물때문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의 허물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동물들 중에 양이 가장 순한 것처럼 보여도 고집이 가장 세다고 합니다. 양은 한 번 어떤 곳으로 가야겠다고 하면 그 곳이 낭떠라지라도 끝까지 그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아무리 설득을 하고 죽음이 있다 하더라도 듣지 않고 제 갈길을 갑니다. 양의 눈은 바로 앞에 있는 양의 엉덩이만 보고 따라갑니다. 가야되는 이유도 모르고 뒤따라 가는 것입니다. 또 양은 청력이 약해서 잘 듣지 못하고 약하다고 합니다. 이 양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조용히 끌려가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크냐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교사들은 주일학교 아이들이 다투면 다 수용하고 타일러야 합니다. 리더는 섬기는 자입니다. ‘제 길’은 방황하는 길을 말하는데 원어로는 ‘술취하고 비틀거린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 원하는 방식, 고집,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다 ‘제 길’로 낭떠러지 죽음의 길로 갑니다. 누군가 내게 험담하고 수군거리는데 변론하지 않을 때 주님은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묵묵히 내게 주어진 상황을 잘 감당하가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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