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 조회수 : 3171 |
작성자 : 최고관리자 | 작성일 : 2010-12-07 |
2010-12-5 주일 낮 예배
김용두 목사님 설교 내용입니다.
민수기 16장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축복의 말씀뿐만 아니라 징계의 말씀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진노의 말씀은 두렵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축복의 말씀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받는 징벌이 나와 있습니다.
민수기의 현장은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상황이 전개되는 곳입니다. 현 시대에는 병원과 학교, 소득의 근원이 되는 직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의 배경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한 세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 버려진 땅에서 거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이에 고라와 다단, 온이 당을 짓고 하나님께 반역을 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언제까지 광야에서 머물러야 하느냐? 하나님의 메신저였던 모세와 아론에게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받은 백성인 것을 스스로 모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고난과 아픔, 상처가 있더라도 저와 여러분은 축복받은 백성입니다. 기도로 늘 하나님과 교통하고 ‘성령의 불’이 있기에 우리는 축복받은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득도 없습니다. 농사 지을 땅도 없으며 우물도 없는 철저히 버려진 땅에서 오직 모세와 아론만 바라봅니다.
버려진 땅에서 이들이 가나안 땅이라는 축복의 땅을 바라보며 애굽에서 떠났는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의식주에 상관없이 훈련받은 것처럼, 성도 여러분들도 천국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훈련받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는 일종의 신병훈련소와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다가 주님 안에 딱 들어오니, 단순히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마치 영적인 신병훈련소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교회에 오게 되면 영적인 눈이 띄어질 것입니다. 진짜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겨야 합니다!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행군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훈련을 받습니다. 예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는 영적인 고민이 없고, 그저 육체가 편하기만 바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는 무엇을 책임져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저 편하게만 지내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 모두 그렇게 삽니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잘 사는 것이 기준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예의 삶입니다.
그러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반열로 올라가니, 책임져야 할 일들이 생깁니다. 애굽에서 내린 10가지 재앙을 보고 두려움에 하나님을 따라나셨지만 하나님의 후속조치에 부작용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해야 하고, 불순종하면 저주받아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이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일 났습니다.
과연 내 당대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의 삶을 잘 견뎌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격려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할 군사로 우리를 바꾸십니다.
주님의 교회는 신병 훈련소입니다. 신병훈련소에서 제대로 훈련받아야 하나님의 군사가 됩니다.
방송에서도 군대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뼈를 깎는 처참한 훈련의
과정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저 훈련이 끝난 후 절도 있는 군인의 모습만 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에 오면 자신의 유치한 인간성이 다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유치한 말과 생각들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솔직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안 쓰십니다. 여러분의 약점이 하나님 앞에 드러날 때, 이것은 내가 반드시 고쳐야겠다며 바로 수긍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꾸 자신을 변명하고 포장하려고만 하면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십니다.
인격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은사만 받으면 변질됩니다. 타락하게 됩니다. 은사를 교회를 파괴하는데 쓰라고 하십니까? 여러분 마음 속에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니라고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모든 훈계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훈련 모습들이 다 드러납니다. 주님의 교회도 다
드러나야 합니다. 훈련의 모습이 다 드러나고 약점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약점이 드러나면 회개해야 합니다. 은사를 사용해서 엉뚱한 예언을 한 후, 그저 입만 싹 닫아버립니다. 아닌 척 합니다. 그 것 무섭게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무섭게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 예언을 한 후 본인은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명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엉뚱한 사명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하며 죄짓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이것이 민수기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비참한 훈련을 받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안의 불순종과 비겁함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이런 강력한 훈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참된 부모와 목자는 거짓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육해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님 말씀을 자녀에게 강조하기 이전에 본인이 먼저 깨끗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기까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 정말 중요한 단위를 차지합니다. 가정 자체가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죄와 싸우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훈련받으면, 자녀와 아내 모두 훈련받기 때문입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연단받기 때문에 가장은 사리판단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연단을 피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스트레스를 견뎌야 합니다. 그 훈련을 저와 여러분이 하고 있습니다. 만약 부모가 이렇지 못하면 자녀들이 영적인 불침번을 서야 합니다.
누군가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천국 문 앞에 그 어머니의 어린 두 자녀의 영혼이 울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보니, 자녀들이 엄마의 시체를 놓고 애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의 영혼을 데려가려던 천사가 그 두 자녀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엄마의 영혼을 세상에 다시 내려 보냈습니다. 이 간증처럼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영계가 움직이고 사건이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힘은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그저 육신의 정욕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은 짐승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책임지는 결단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부모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온이 모세를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두령들 열 받기 시작합니다. 모세와 아론만 명령을 하고 자신들은 순종만 해야 합니다.
‘왜 당신들만 제사장이냐. 우리도 하고 싶다. 왜 모세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왜 네가 왕이 되려 하느냐’ 인간적으로 맞는 말인지 몰라도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민주주의처럼 총회를 세워 다수결로 이끌어가자는 주장이 합리적인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말씀하십니까?
제사장에게는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설교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베어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광야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은혜를
받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절실히 말씀을 받아들이느냐를 가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능력 받고 하나님의 직분을 받으면 시기를 많이 받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이 왜 제사장의 직분을 독점하는거야? 두령 250명이 반발합니다.
직장생활은 상하가 분명합니다. 윗 상사는 능력과 권한이 있습니다. 일단 세상일은 돈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면 그저 일을 그만두면 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피차 섬겨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영적 권위와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것이 모세 개인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인도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의논해야 할 일도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곧 생명이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함이 있어야 일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모세는 결국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 뒤에는 마귀사단이 있고, 이에 동조하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혈족인 미리암까지 모세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그저 엎드립니다. 백성들 앞에서도 엎드립니다.
사단이 공격할 때는 집중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모세에게 일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자신안의 무서운 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저의 죄악이 너무 많이 드러납니다. 그저 죽고만 싶습니다.
제 안의 죄악이 너무 두렵고 추악합니다. 나의 죄만 너무 많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저의
스트레스가 됩니다.
정말로 저와 여러분은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앞에 그저 많이 엎드려야 합니다.
만약 주의 종이 되려면 더욱 부드럽고 온순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항상 양보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별별 욕을 해도 그저 속으로 삭혀야 합니다. 인격적으로도 단련 받고 영적으로도 단련 받아야 합니다. 그저 능력 받았다고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인격적으로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 그만 두십시오. 주의 종이 될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본인의 죄만 더욱 드러납니다. 성도들이 알까봐 너무 두렵습니다. 기도를 더욱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맞을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해서 불렀기에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속제의 재물인 짐승을 날마다 죽였습니다. 짐승의 피를 뿌리고, 배를 가릅니다. 불로 태웁니다. 평생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의 죄짓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잘못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욱 무섭게 심판받습니다.
그러면서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면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사역을 하면 마귀사단이 가정과 자녀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주님을 섬겼는데 왜 내 일이 이렇게 안 될까? 축복받을 일을 많이 했는데 왜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을 안 주시는가? 축복받으려면 후유증이 먼저 생깁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을 놓치면 엄청난 후유증이 생깁니다.
고라의 무리가 백성들과 함께 하니 겁날 것이 없었습니다.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순식간에 멸하십니다. 고라로 인해 그 친족들이 애매하게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가르셔서 250명이 죽었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괴롭힙니다. 자신들의 불순종은 생각지 않습니다.
고라와 아론은 인본주의를 주장했습니다. 평등과 합리성만 주장했습니다.
맞는 말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인본주의가 아닌 온유함과 덕으로 해야 합니다.
충성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멸망을 막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것 때문에 사명이 끝나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모세를 대적한 사람들에게 염병이 생겨버렸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염병을 만들었습니다.
모세는 그저 백성에 대한 온유함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염병이 그치기만을 기도했습니다. 인생자체가 수많은 난제들을 갖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름이 떠오르면 무조건 앞으로 진행해야 하는 순종이 어렵습니다. 머무르다가 진행했다 하는 것 자체가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마무리되면 정복 전쟁을 맡기십니다. 성도 여러분이 훈련을 잘 마무리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열매 맺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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