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설교 요약 "성령을 좇아 행하자"(2010년8월29일 주일예배) | 조회수 : 1840 |
작성자 : cham | 작성일 : 2010-09-04 |
<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5절~18절 >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신앙이 우리의 삶 전체에 관여하게 된다.
신앙생활이란 말 그대로 신앙이 생활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발력이 좋아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괴롭고 속상할 때일수록 반발력이 생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코너로
몰아가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왜 기도하지 않냐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냐고 하신다.
한 마디로 시행착오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구해지고, 찾아지고, 열려지게 되어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우리는 예수님과 결혼한 것이다.
믿으면 믿을수록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 계속 고집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된다.
주님의 뜻에 내 생각을 겸허하게 맞춰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주님은 절대로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에 맞춰서 오도록 인도하신다.
신앙생활이란, 실제로 우리 몸을 잘 움직여서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다.
내 몸을 움직여야만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다.
내 생각을 움직여야만 주님의 생각에 맞출 수 있다.
내 의지, 감정을 움직여서 사용해야만 말씀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잘 잊어버리고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설득하신다.
아무리 깨우쳐 주시려고 해도 못 깨달으니까 코너로 몰아가기도 하신다.
때로는 육신의 질병을 통해 우리를 설득하신다.
이래도 기도하지 않는구나, 더 기도하라고 우리를 설득시키신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이런 갈등과정이 곧 성화의 과정이다.
육체는 죄가 있는 죄된 육체이므로, 그 힘이 무척 강하다(로마서 7장 24절).
한 번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지배한다(요일 3:8, 눅 11:21~22).
죄는 매우 끈질기며, 가만히 있지 않고 장성한다(야고보서 1장 15절).
예수님을 믿게 되면, 죄가 있는 육체와 성령님과의 처절하고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예수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옳기 때문에, 죄성에 젖어있는 우리가 거기에 굴복해서 맞춰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고 일일이 말씀하시기보다는 차라리 침묵하신다.
각자가 해결해야 할 죄를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교회는 이상한 복음을 따라갔다.
정통 유대인들이 율법을 강조했는데, 결국은 교회 전체가 유대교로 돌아서게 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복음이 원하는 것은, 회개하고 성령의 불세례를 받는 것, 즉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삶이다.
예수님이 오기기 전의 유대교는, 당장 결재할 돈이 없어서 약속어음을 끊어준 것과도 같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어음을 내놓으면 무조건 결재해야 한다.
예수님이 오셨으면, 율법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유대교의 율법은 생활 곳곳에서 지켜야 할 세부적인 기준들이 많았다.
기도는 이 정도, 성경 읽기는 이 정도, 봉사는 이 정도 해야 한다, 이런 죄를 지으면 이 정도의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세세한 기준들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에는 자유함이 있고 끝이 없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충성해도, 만족하거나 자만할 수 없다.
이것이 복음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따라갈 뿐, 이 정도면 됐다는 자기 만족이란 게 없다.
오늘도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십일조를 안 해서 지옥에 가는 게 아니다.
주일성수를 안 하거나 십일조를 안 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일성수를 못한 사람은 최소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야 한다.
그래야 회개하고 기도할 수 있다.
주일성수를 하는 사람은 주일성수를 했기 때문에 떳떳해하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건 결코 복음적인 게 아니다.
주일성수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복음에는 자유함이 있으므로, 이 자유함 때문에 오히려 타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셨으니 먹고 마셔도 된다고 생각하면 방종하게 된다.
율법은 간절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올가미로 꼼짝 못하게 묶기 위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돕는 것이 율법이다.
그런 율법을 절대시해서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여기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 정신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일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끊임없이 갈등하신다.
괴롭고 속상하고 갈등하는 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장 8~10절)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죽은 자같이 된다.
자기 신세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어 죽고 싶어진다.
죄가 생각나고 회개하게 된다(이사야 6장 5절).
죽고 싶을 정도로 내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임을 절감해야 한다.
“
우리가 육체의 정욕으로 일관할 때, 죄를 토설하지 않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거부하신다.
내 안에 있는 음란, 다툼, 투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부터 꺼내서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계속 신앙양심을 자극하신다.
내 속에 있는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성령님께서 나를 떠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범답안을 잘 주시지 않는다.
은사만 가지고 답을 구할 수 없다.
은사의 종착역은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사역도 시작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모범답안을 주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어
영적 사고력이 떨어진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주시고 모범답안을 주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사고력이 개발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응답하시지 않나, 왜 길을 열어주시지 않을까를 고민하면서, 길을 열어주시지 않는
그것 때문에 자신에 대해 깨달아 가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하도록 영적 사고력이 길러지며 영육간에 훈련된다.
지금까지는 내 기준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지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로마서 12장 2절).
연단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영적인 비밀병기가 되어 마음껏 쓰임받을 수 있다.
성령의 역사를 소멸시키지 말자.
성령님께 내 생각, 감정, 의지를 내드리고 성령님과 협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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