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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 요약 "억지순종" (2009년6월7일) 조회수 : 1670
  작성자 : cham 작성일 : 2009-07-12

본문 : 누가복음 5장 1~11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갈 때 고민거리가 많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내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뭘 하며 먹고 살 것인가 등등.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앞날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켜주고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걱정하느냐, 너희에게는 아버지가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세상에 많은 만남이 있는데, 그 중 예수님과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만남이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오셨을 때, 어부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있었다.
고기를 못 잡아 신세한탄하고 푸념하며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그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 때, 30대 초반의 청년 예수님이 오셨다.
어부들이 내일을 위해 배에서 내려 그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한 배에 오르셨다.
그 배는 시몬의 배였다.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한 다음,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시몬은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누군데 내 배에 올라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런 궁금증, 호기심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걸 알아야 한다.
주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에 내가 있었다면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들러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님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만나주셨고, 병 고칠 만한 믿음을 가진 소경 바디매오를 만나주셨다. 
이처럼 주님을 체험할 만한 믿음의 분량이 되어야 한다.
이 분량이 채워지지 못하면 주님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난의 분량, 연단의 분량, 기도의 분량이 채워져야, 아픔과 질병을 통해 그 분량이 채워져야,
간절하고 갈급하게 되어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오직 베드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 각자는 주님의 시선이 집중되는 사람이 되며, 또한 주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능력, 은사, 은혜를 주실 때, 그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기도를 하면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나를 강력하게 사용해 주시도록 간구하고, 물살을 거스르며 역풍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일하신다.
세상 흐름에 휩슬려 살다가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살다가는 쓰임받을 수 없다.

왜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집중하셨나?
5장 4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내려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을 통해 일어나야 할 일들이 많았다.
시몬은 교회의 중심 인물이 될 것이었고, 그를 통해 수천 명이 회개하게 되며,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해야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죽을 때도 그냥 죽지 말고 누군가에게 꼭 영향을 주고 죽어야 한다.
스데반 집사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돌에 맞아서 죽은 것, 순교였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를 말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다.
그의 순교는, 그 자리에 있던 사울에 분명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주님께로 돌아와야 할 한 영혼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 존재 가치, 목적이다.
주님도 가실 때 우편강도를 데리고 함께 천국 입성하셨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주님을 따라가려면 삶의 본질이 변화되어야 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모르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 바닥에 있는 영혼을 찾아다니셨다.
그리고 그들을 말씀의 세계로 초청하셨다.
말씀이 현실이 되는 현장, 그 능력의 현장으로 초청하신 것이다.
드디어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다.
베드로는 온전히 헌신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믿음이 대단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도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가라고 하셨지만, 그는 아버지와 조카 롯의 일행도 데려갔다.
아버지도 조카도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과감하게 버리고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다.
결국은 중간에 아버지 데라가 죽고 롯과도 갈라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삶을 가볍게 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 때문에 오히려 손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밤새 고기도 못 잡고 힘들어 죽겠는데, 빨리 정리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그런 자신의 배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셨던 것이다.
주님의 시선은 오직 베드로에게 있었으며, 오직 베드로를 염두에 두고 계속 말씀하셨다.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서 주님의 깊은 마음을 느끼며 주의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무런 이유도 설명해 주시지 않았고, 미래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도 없으셨다.
베드로는 가장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저 잔소리로 들릴 수 있었고, 오히려 짜증내고 화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다고 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다보니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겨났다.
억지로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자체, 그 자세가 깊은 곳이다.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은혜받지만, 시몬은 결과를 모르는 상태라 은혜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잘 된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을 인정하고 은혜받지,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베드로가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전혀 순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상식적으로 이해되진 않지만, 지금껏 말씀을 들다보니 조금은 신뢰가 간다, 
긴가민가하지만 피곤에 지친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 주니까 그게 고마워서라도 한 번 해보겠다, 는 것이다.
이런 작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고 영적으로 깊은 데까지 들어가게 된다.
영적인 감각이 예민해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놓지지 말고 억지로라도 순종하자.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일 만한 원동력과 피뢰침이 될 수 있는 믿음, 기도 헌신 등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본인이 원해서 깊은 데로 그물 내린 게 아니었다.
베드로도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도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시고
쓰시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할 수 없다. 평소의 습관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
내가 아무리 신령한 경험이 있더라도 기도하고 말씀 보고 순종해야 한다.
뱃사람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을 버리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순종이었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순종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깨닫기 시작한다.
주님을 온전히 좇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당면한 베드로의 문제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순종하는 것으로 단번에 해결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경험, 노하우는 무용지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감각이나 본능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주님의 일을 할 때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순종하자.
주님께서 나를 신뢰하셔야 은사와 능력도 주시고 쓰실 수 있다.
깊이 들어가야 주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제대로 순종할 수 있다.

주님, 우리가 움직여야 할 깊은 곳이 어딘지 알게 하시옵소서.
헌신의 더 강도를 높여서 주님의 품으로 뛰어들게 하소서.
주님께서 내 배에 오르시기를 원합니다.
내 삶의 현장에 오셔서 역사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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