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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 정리-주님의 불편함(2013년6월24일) 조회수 : 1549
  작성자 : chamkkot 작성일 : 2013-07-31

이사야 55:6~9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6~7).

같이 합시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걷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철야하며 은사도 받으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같이 걷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같이 합시다.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전에 그런 내용으로 설교를 많이 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대략 네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도 지옥 자식이 되도록 하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겠다는 마음이 있으십니다. 지옥의 심판이나 형벌을 면하고 반드시 구원하려는 생각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꼭 붙잡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우리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있으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우리에게 좀 더 많이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천국에 올 때 빈털터리가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같이 합시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면,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것만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목회자들보다 성도들이 받는 하늘의 상이 더 큽니다. 목회자는 교회에서 사례를 받으면서 생활하지만, 성도들은 직장에 나가 열심히 돈 벌고 현실과 싸워 이겨가면서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가보면 상이 굉장히 큽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목회자는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상을 더 많이 잃고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원없이 돈 벌어서 주님을 위해 마음껏 헌금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처럼 더 귀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땀 흘리는 일이 얼마나 큰 일입니까. 막노동은 정말 노동의 신성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여전히 서로 충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만 있으면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불어넣고 그분이 원하시는 환경을 만들어 우리를 자녀답게 살도록 이끄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을 그어서, 여기까지는 역사해 주셔도 되는데요, 여기서부터는 제 사생활입니다, 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일정 부분 이상 간섭하시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제도 싫어합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손잡고 걸어가려면 어린아이 수준으로 보폭을 맞춰야 합니다. 어른은 한 발짝 뗄 때 이제 막 걸음마하는 아이들은 거의 부축해서 열 발자국 스무 발자국 정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릴 어떻게 다루시는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보폭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걸음걸이에 우리가 익숙해지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과 우리가 걸음걸이를 맞출 때 더 힘들고 더 어렵고 더 속상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사모님과 같이 걸으면 저는 큰걸음으로 막 가는데 사모님은 종종걸음으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제가 한참 앞서가다가 뒤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데 우리보다 하나님이 더 힘드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힘들어 죽겠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힘들다는 말씀을 잘 안 하십니다. 능력이 형편없는 사람과 능력이 많은 사람이 함께 하려면 서로 수준을 맞춰야 하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능력이 많은 사람은 많은 사람대로 힘듭니다. 다리를 묶어서 이인삼각 경기할 때 서로 보폭 수준을 맞춰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우리 수준에 맞춰주시는 불편을 다 감수하십니다. 같이 합시다. 하나님께서 불편함을 감수하신다. 할렐루야!

전에도 그런 얘기를 했을 텐데, 주님의 교회에 있으신 분들은 많이 들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끼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짜증내고 열 받고 스트레스 받고 안 가겠다고 강짜 부립니다. 주님 혼자 일하시면 말씀 한 마디로 다 하실 수도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기고, 궁창이 있으라 하면 궁창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를 동참시키길 원하십니다. 주님과 연합할 때까지, 그리고 연합하고 나서도 하나님은 더 힘드십니다. 나와 함께 어깨동무하고 걸어가자고 하시지만, 실은 우리가 지쳐 쓰러져 더 이상 걷지 못할 때 우리를 업고 걸어가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같이 걷고 싶고 동행하고 싶고 같이하고 싶은데, 그 믿음의 동행을 시기질투하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영적이며 암적인 존재가 크게 두 세력이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사단의 세력입니다. 내적으로는 우리의 육체, 자아, 고집, 자존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육신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입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육신을 성령의 능력으로 통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자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과정에서 사단의 공격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좌절해 버립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또 좌절할 수 있습니다. 서운한 감정이 생깁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게 됩니다.

그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좌절하고 서운하고 실망하고 상처받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자기 경험에 따라 착착 진행되면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경험이 자신을 옭아매는 틀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틀이 달라서 이제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부부 간에도 아무리 허물 없이 지낸다고 해도, 남편과 아내가 각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답답하고 다툴 수 있습니다. 일보 전진을 위해 이보 양보를 해야 합니다. 가정이 유지되고 같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전진을 위해 열 번은 더 양보해야 될 일이 많습니다. 청년들 왕자님이나 공주님하고 결혼하는 것을 꿈꾸는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결혼하면 서로 족쇄가 돼서 얽히게 됩니다. 하는 일마다 서로 발목을 잡고 말꼬리를 잡고 감정을 잡고 생각을 잡습니다. 각자 경험한 것이 틀이 되어 족쇄로 작용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바보천치가 되어야 가정이 유지됩니다.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서운해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게 옳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쪽으로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즉석복권을 동전으로 긁듯 그 즉석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종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실망하고 서운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이 너무 버겁고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교수 두 사람이 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느냐고 물어와서 제가 옛날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그분들이, 나 같으면 도망갈 거예요, 땅속에서 몇십 년 동안 어떻게 그렇게 견딥니까, 그랬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예레미야는 목까지 차는 진흙구덩이에 던져져서 앉지도, 눕지도 못했습니다(렘 38:6). 에스겔은 왼쪽으로 삼백구십 일, 오른쪽으로 사십 일을 눕고, 밀, 보리, 콩, 팥, 조, 귀리로 떡을 만들어서 먹고, 그걸 만들어서 먹을 때 사람의 똥을 말린 것으로 불을 떼서 구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겔 4:4~17). 이스라엘의 죄를 담당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의심하는 불신앙으로 발전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느냐 들어주지 않느냐입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하나님이 계시는 거고,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겁니다. 택한 백성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도응답을 받으면 할렐루야, 하나님은 역시 살아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이 조금 지연되거나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죽었나, 어디 출타 중이신가,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내가 원하는 방식에 길들여지다 보면 가는 길이 점점 넓어지게 되는 겁니다. 길이 넓어지다가 필경은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할렐루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길을 가지 않고, 내가 가는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내가 코너로 몰릴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됐지만 감사합니다. 그럴 때 좁은 길처럼 보이는 것이 어느 순간 시온의 대로로 열릴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거의 대부분 다른 방식으로 응답을 주십니다.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똑같이 기도했지만 응답, 즉 받아야 할 시험이 각각 달랐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으로,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같은 은혜를 받았지만 받는 연단이 다 달랐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렇게 응답해 주시겠지, 하며 우리의 요구로 하나님의 응답 방식을 제한합니다. 그러다 응답이 안 오면 좌절해 버립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고백했습니다(갈 2:20).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 그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경계선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면 십자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지옥과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경계선을 넘어가면 절대 안 됩니다. 할렐루야! 같이 합시다. 우리는 십자가의 경계선이 있다.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정과 욕심을 다 십자가에 못박았어요. 그렇게 못박고 주님 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선을 넘어가면 절대 안 됩니다. 할렐루야!

성령님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심으로 대가를 치르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선물인데 하나님, 예수님께는 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가입니다. 아들아, 네가 십자가에 잔인하게 죽는 방법밖에 없다. 성령이 저들에게 가야 한다. 아들이 십자가를 통해서 죽어야 성령이 가는 것이니, 아들아 너는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가로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예수님을 기만하고 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기도를 바꿔야 합니다. 주님, 저를 붙잡아 주세요. 주님께 잡히게 해주세요. 할렐루야! 주님, 저를 놓치지 말아주세요. 주님, 시험이 왔습니다. 시험을 이기게 해주세요.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바깥에 있으면 답답할 게 없습니다.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거치는 대로, 싸울 거 싸우면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 성령님 안에 있기 때문에, 기도하고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신 답답함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세상 모든 고통이 우리에게서 점점 사라지고 우리 자신이 없어져가고 우리에게 세상적인 가능성도 거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답답한 겁니다. 예수님 안에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답답함이 내가 믿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됩니다.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께 엎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일찍 항복하는 겁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 항복하고 엎드려 우리의 본성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같이 합시다. 내 본성을 치료받아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님의 역사가 지속됩니다. 우리의 기질적인 부분, 성적인 부분, 영적인 부분, 육신적인 부분, 인격적인 부분, 정신적인 부분 모두 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님의 역사는 지속되는데 방해하는 세력도 지속됩니다. 우리의 육체, 자아와 싸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조금씩 죄를 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은혜를 거두시지 않는 것은 정말 귀한 겁니다. 할렐루야! 답답하고 우겨쌈을 당하고 우겨쌈을 당하지 않습니다. 갇혀 있어도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갇혀있다고 하게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답답하고 갇혀 있고 우겨쌈을 당하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세계, 은혜의 강물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할 수 있는 힘, 기도할 수 있는 힘도 생기는 겁니다. 성령님의 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느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항상 두 가지가 부딪칩니다. 하나는, 내가 꼭 지켜야 될 법이고 또 하나는, 예외적인, 변수적인 룰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구원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사랑하고, 겸손하고 순종하고 이런 것들은 기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할렐루야! 또 한 가지 예외적인 변수는 개개인의 믿음의 분량에 달려있습니다. 믿음, 성령의 능력, 치유, 기도, 능력, 응답 등을 끌어내는 부분에 있어서는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변수가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방정식에도 상수가 있고 변수가 있어서, 어떤 수를 대입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답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인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능력 위에 이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채워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불 자체가 자랑이 돼 버리기도 합니다. 사역 자체가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되면 절대 안 됩니다. 할렐루야! 성령의 불을 받으면서도 하나도 없는 것처럼, 은사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누가 은사를 자랑하더라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능력, 성령의 불세례가 한 개인의 자랑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때 끝까지 겸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호세아 6장 3절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서 여호와를 알자, 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게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해서 알게 되면, 알면 알수록 죽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내 혀가, 이 육체가 내 맘대로 조절이 안 됩니다. 생각도 감정도 조절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과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끝나거나 영이 열려서 하나님 앞에 가면, 점점 가면 갈수록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육체가 폭발을 해버립니다. 음식물이 몸에 들어가서 소화가 안 되면 막 구역질이 나서 올라오듯이 육체의 모든 기능이 구역질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빛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인 줄 알고 이 땅에서 죄 짓는 데 사용하다가 주님 나라에 가면 그 죗값을 담당하고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회개가 잘 안 돼서 몸부림치고 고통하는데, 그보다도 몇 천만 배의 고통을 지옥에서 겪게 됩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능, 세포, 원형질, 관절, 골수, 모든 기능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 말을 합니다. 이 인간은 이런 죄 지었어요, 그렇게 내 혀가 하나님 앞에 직고하는 겁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에게 죄의식이 생겨납니다. 보통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죄인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이 자동으로 만들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이 몸이 견딜 수 없어서 토설하게 됩니다. 죄를 막 토설하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이런 일은 더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한 번 임재를 경험하고 나면 우리의 삶은 거룩해지고 경건의 능력이 생깁니다. 지식으로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먼저 부패한 지파가 열 지파였습니다. 솔로몬 왕 아들 르호보암이 자기 아버지처럼 하지 않고 더 독재하고 아버지 때의 신하들을 쫓아내고 핍박합니다. 그가 그렇게 믿음을 떠나니까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열 지파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유다와 레위 두 지파만 남겨두고 다 북쪽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그 열 지파가 서서히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망해 버립니다. 나중에 남쪽에 있는 두 지파도 타락합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을 바벨론 제국이 송두리째 먹어버리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재앙으로 가시화될 때는 이미 너무 늦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회개하면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너무나 교묘해서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죄와, 백성들 속에 깊이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쟁을 통해 부숴버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6장 1절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고 합니다.

좀 염치없고 뻔뻔하지만, 주님 앞에 올 때는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 실패했습니다. 저 실수했습니다. 주님, 저 큰 잘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회복이 안 되는데 용서해 주옵소서.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와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 아들이 아버지를 안 닮고 누구를 닮습니까, 그랬습니다. 죄를 지었는데 용서해 달라는 그 말도 구차해서 잘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말이 그랬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제 머리를 만지십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아들이 아버지를 안 닮고 누구를 닮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막 웃으셨습니다. 옛날 할아버지가 어지간히 안 듣는 손자를 두고, 아이고 고놈 참, 그러듯이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말씀을 마칩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우리와 안 맞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때를 기다리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기도제목이든 간에 주님 앞에 아뢰고, 끝까지 기도해서 때를 단축시키고, 주님이 역사하시도록 인도받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 큰 불편을 감수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물권을 주실 때까지 웬만한 불편함은 잘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성숙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신뢰가 싹터 주님의 뜻을 기다리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이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좋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저주를 풀어주시고, 압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끝까지 참고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종이 오늘부터 한 달 동안 교회를 비우게 되는데, 우리 주님 함께 하셔서 우리 목사님들께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통해 성도들이 힘을 얻게 하시며, 주님의 교회가 더 탄탄하게 일어나게 하시고, 물권도 열어주시옵소서. 성도들에게 강력한 믿음을 주셔서 어둠의 영들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시고, 혹시 오더라도 주의 이름으로 다 쫓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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