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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 정리 "요셉의 연단" (2013년6월21일) 조회수 : 1671
  작성자 : chamkkot 작성일 : 2013-07-25

<시편 105:16~19 >

같이 합시다. 요셉의 연단. 이러한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누구와 친구를 맺고 누구와 동행을 하는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친구를 보면 동행하는 사람을 알 수 있고 동행하는 사람을 보면 친구를 알 수 있듯이, 내가 누구와 함께 동행하며 누구와 함께 말을 하는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주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할렐루야! 그래서 잠언 13장 20절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누구와 사귀고 누구와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영적인 교회에 오는 것이 중요하고, 영적인 만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상에 많은 만남이 있지만 상대적인 만남이나 한정적인 만남은 변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절대적인 만남은 주님과 우리의 만남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뜻을 펼치시기로 결정하신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사하실 때 그 능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의 특권을 사용할 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섞으셨습니다. 기도해서 깊이 들어가다 보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 안에 기도가 막 양념처럼 뒤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섞여 있는데 기도를 강력하게 하니 응답이 기도의 줄기와 함께 무궁무진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정말 기도가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1년 기도해서 응답받을 게 있고, 5년 기도해서 응답받을 게 있고, 10년 기도해서 응답받을 게 있습니다. 한 달 기도해서 응답받을 것도 있고, 기도응답이 그때그때 바로바로 올 때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시편 115편 16절에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간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우리의 책임일 수 있고,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미국 사람들의 책임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지역의 책임자에게 숙제를 내주십니다. 한 나라에 숙제를 내주실 때 그 나라의 숙제를 맡은 민족과 지도자가 그걸 풀어나가야 됩니다. 그 숙제의 내용이 어떤 나라에는 재앙으로 오는 겁니다. 보통 재앙으로 많이 옵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산불이 일어나면 산불을 끄기 위해서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노력합니다. 토네이도가 일어나면 미국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재난지역을 선포합니다. 그러면 국민들이 놀러가고 쇼핑하고 캠핑이나 바캉스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그 다음 주에는 교회가 미어터진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에 해수욕장마다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태풍이 와서 싹 쓸어버리고 사람이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가면 모든 계획들을 다 접어두고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신앙을 되찾고 회복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 한 민족, 한 지역에, 때로는 교회에 숙제를 내주시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숙제를 내주십니다.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면 가정의 가장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면 목회자와 성도들이 정신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영적인 문제는 영적으로 풀어야 되고, 육신적으로 잘못한 것은 육신으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숙제를 내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숙제를 안 풀면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책임이고 롯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의인이 없어서 망하는 거니까요. 의인만 있으면 절대 망하지 않고, 진노 중에라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기도로 입씨름하는 사람, 말씨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처럼 천사와 씨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기 전에는 형 에서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어 다리를 질질 끄는 등신이 되니까 그 모습을 보고 형 에서의 마음이 확 녹아버린 것입니다. 에서가 아직 한이 맺혀 있으니까 사백 명의 부하를 데리고 나타났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다 돌보시고 하늘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돌보시지만,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몫으로서 우리가 책임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그러므로, 하물며’ 이런 말들은 능력, 응답, 기도와 관련해서 성경에 씌어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거기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기도 응답을 못 받는 것은 대부분 나 이거 못해, 난 이런 스타일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다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능력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다 귀신을 쫓아내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귀신을 못 쫓아냅니다. 주님께서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 기도해서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보다 더 큰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그 사람보다 두 배는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도, 천국도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좀 독특하게 쓰임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 나름대로 독특한 구석들이 있습니다.

요셉 같은 경우 말씀이 응할 때까지 연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왜 형님들한테 배신당했는지 모르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구덩이에 던졌다가 다시 끄집어내서 르우벤의 제안으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차꼬을 차고 꽁꽁 묶여서 팔려가는데 신세한탄을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셔서 보디발 장군이 자기 집 곳간 을 다 요셉에게 일임했습니다. 형통했지만 현실은 그 발이 차꼬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이나 아픔이나 시련도 할렐루야 하고 견디며 가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는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단련받는 것입니다.

‘문일지십(聞一知十)’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와 동행하고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인생에 어떠한 일이 전개되고 있는데, 내가 여기에 대해서 궁금증을 안 갖습니다. 저도 너무 막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기도하고 전도하고 성경 보고 가르치면 되는 줄로만 알고 그렇게 18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합니다. 하나님이 소명을 주셔서 목회자가 되고, 소명 속에서 사명이 만들어져서 사명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같이 합시다. 사명에도 내용이 있다. 소명 속에서 사명이 결정되어진다. 사명 속에서 길이 보인다. 사명에 내용이 있습니다. 소명에도 개인소명이 있고 단체소명이 있습니다. 나 혼자 소명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나와 같이 협력해서 소명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사명에는 핵심사명이 있고 보조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핵심사명은 절대로 우리가 놓쳐선 안 되지만, 보조적인 사명도 필요합니다. 핵심사명에 집중해야 될 때는 핵심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핵심사명을 가져야 할 사람이 보조적인 사명에 사로잡혀 있다면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핵심사명, 보조사명자들이 모여서 협력하며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명이 생기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이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할렐루야! 같이 합시다. 기도도 집중력을 발휘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이 생겼을 때, 특히 일이 꼬이거나 잘 안 될 때는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문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기도를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능력과 직결이 됩니다.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왜 나는 이렇게 연단을 많이 받죠? 왜 이렇게 고난을 많이 받습니까? 말씀이 응할 때까지입니다. 인내하는 기간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단련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질문을 잘 합니다. 핵심을 절대로 비켜나가지 않고 정확하게 집어서 선생님한테 질문합니다. 영적인 것이든 모든 것에서 예리한 관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관찰력을 통해서 사물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스키를 탈 때도 똑같은 폼인데 강사는 안 넘어지고 어설픈 사람은 넘어집니다. 계속 질문하며 시도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고민이 생깁니다.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질문, 사람에 대한 질문, 현실과 상황에 대한 질문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수학공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풀다가 알고 보니 이게 공식이 있습니다. 공식을 모를 때는 고생했는데, 공식을 완전히 터득하고 나면 공식만 대입시키고 적용시키면 문제가 척척 풀립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우는 것은 모방하는 것입니다. 잘 배우는 사람은 모방을 잘 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믿음을 모방하고 흉내내는 과정에서 질문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내게 질문이 많이 생기면 모방하는 대상과의 차이가 좁혀지게 되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을 닮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엘리야는 무릎 사이에다 넣고 기도를 했을까? 어떻게 하면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세처럼 산에 가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지는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여호수아처럼 태양을 향해서 태양아 너는 기브온 골짜기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 그렇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도 능력을 주시는 부분에 초점이 안 맞춰지고 부담이 없는 부분에 초점만 맞춰가서 설교하고, 이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면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랬겠지, 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그러므로, 언제든지, 누구든지, 항상’ 이런 말들과 함께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이 3만 번 이상 있는데 쏙쏙 피해갑니다. 같이 합시다. 믿음의 질문을 잘 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저도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목에서 핏덩어리가 나오는 겁니다. 갑자기 뜨겁게 달궈진 모래를 확 끼얹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샤워하려고 거울을 봤더니 핏줄이 터져서 온몸에 모래알 같은 피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윤목사님이 인수하기 전에 흰돌산 기도원 원장님이 여자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분 간증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분이 주님처럼 기도하고 싶어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귀에서 물이 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했는데, 고막이 터져서 조수 노릇을 하는 집사님이 식사하라고 불러도 못 들었습니다. 그런 간증을 들었어요.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할렐루야!

성경을 읽으면서, 혹은 기도하다가 영적으로 답답하거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고민해야 합니다. 고민이 없으면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다. 질문이 만들어져야 믿음의 사람과 나와의 차이가 좁혀지게 됩니다. 고민이 없으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질문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더 많이 배우게 해주십니다. 할렐루야!

같이 합시다. 좋은 습관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 할렐루야!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훌륭한 사람처럼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성경에 있는 믿음의 사람을 따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고난받고 있습니까? 연단받고 있습니까? 요셉을 생각하세요. 발에 차꼬가 채워지고 말씀이 응할 때까지입니다. 요셉이 연단과 고난과 아픔을 겪은 것을 통해 요셉의 학습방법이 생각나는 겁니다. 할렐루야!

학습을 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잘 봐야 합니다. 같이 합시다. 잘 듣고 잘 봐야 한다. 할렐루야! 셋째, 잘 따라서 해야 합니다. 오감을 통해서 믿음이 다져지고 다져지게 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의 지도력에 대해서 수용하는 자세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마찰이 있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내가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붙잡고 쓰시는 겁니다. 같이 합시다. 하나님 손에 붙잡혀야 한다. 그렇게 쓰임받고 싶은데 고난에 대해 훈련이 안 돼 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만 훈련이 돼 있습니다. 지식적인 부분에서만, 나보다 상황이 더 좋은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훈련돼 있어요. 나보다 더 열악한 사람에게서 배우는 훈련, 정말로 악조건에서의 훈련이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것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 버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면 모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기도습관, 그들의 행동, 그들의 환경이 보이면서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역할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선한 사람도 만들어질 수 있고 악한 사람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반드시 앙갚음을 하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미에게서 지혜와 성실함을 배울 수도 있지만, 개미들은 이기적이고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보면서 그저 부스러기만 주워먹는 더러운 새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기 때문에 나쁜 인간을 거머리 같다고도 하지만, 실은 거머리는 썩은 피를 빨아먹고 병을 치료합니다.

오늘 어느 사모님하고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려움이 많이 제가 그 집에 쌀도 갖다주고 김치도 갖다주고 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살았는데 가서 보면 또 부부싸움 하고 있습니다. 치고받고 싸우고 그러다가도 찾아가면 두 분이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분들이 감옥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답니다. 감옥에 갇혀도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범죄기술을 더 배워서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에 김정은이 히틀러가 읽었던 <초인> 이라는 책을 지금 읽고 있다고 합니다. 그 책은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라는 사람이 썼습니다. 그 책을 읽은 히틀러가 자기도 초인이 되겠다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수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김정은이 읽고 있습니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우리 정신 바짝 차려야 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필수적으로 걸려있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것들, 예를 들어 내, 자식, 내 물질, 건강, 환경 등등으로 훈련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프게 하셔도 내가 잘 견딜 수 있고 별로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은 건드리지 않으십니다. 이건 건드리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갖고 다루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기도하고 엎드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넉넉한 상황에서는 절대로 훈련이 안 됩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든지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비로소 훈련이 됩니다. 말씀이 응할 때까지, 말씀이 우리를 단련하는 것입니다. 단지 환경을 통해서만 단련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아야 말씀이 우리를 단련합니다.

하나님이 너무 조용하게 계시니까 하나님을 깨우기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조용히 기도해 보다가 안 통하는 것 같으면 부르짖어 기도해 보고, 부르짖어 기도해도 안 될 것 같으면 금식기도 해보고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매달려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의 근육이 만들어지잖아요. 할렐루야! 개나 돼지나 소는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저 감각적으로 살아갑니다. 그저 짐승일 뿐입니다. 먹을 것만 준다고 하면 그냥 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인격이 있습니다. 얼굴 표정 하나하나, 감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관심대상입니다. 이 말씀을 부여잡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은 하나님의 때를 단축시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쓰시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몸부림을 쳐야 할 때는 몸부림을 쳐야 될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합시다.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고, 힘을 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맺고 풀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이고, 찬양이고, 하나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일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좋은 모방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 손에 붙들릴 수 있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꼬에 채워지고 쇠고랑을 우리 몸을 묶는다 할지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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