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1월 12일 설교 / 특별한 역할 | 조회수 : 2764 |
작성자 : 최고관리자 | 작성일 : 2011-01-18 |
2011.1.12.
전도서 4:9~12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특별한 역할
인생에서 친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10살 때 만난 제 단짝친구는 저와 성향이 비슷했습니다. 그 친구는 내성적이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는 취미가 비슷했습니다.
우리는 편지를 통해 우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10대 중반에 일주일 동안 작정 기도한 것에 응답을 받아 기도의 묘미를 맛보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나와 하나님만 아는 문제를 기도로 씨름하며 해결 받은 것입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간 기도해서 응답을 주셨다면, 나에게 굴레처럼 씌워진 운명을 기도로 풀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만화의 첫 장을 넘기면 만화 주인공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대로 각인이 되어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만화방에서 전쟁만화, 중국 무협지 등 몰래 찢어 소리 안 나게 주머니에 구겨서 넣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안 계시고 집안이 가난하다 보니 이것을 똑같이 그려서 친구들에게 팔아먹었습니다. 이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입니다.
나중에 만화책을 많이 보던 버릇이 성경을 볼 때 아주 유익했습니다. 성경을 속독할 수 있는 버릇이 자동적으로 몸에 배었습니다. 일주일에 일독씩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 보는데 눈이 띄어졌습니다. 거기에 기도응답까지 받으니 신앙생활이 너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흥집회 가기 전에 누나와 심하게 다투다 누나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부흥강사가 누나와 싸우고 온 사람 회개하라고 하는데 마음에 강한 찔림이 있었습니다. 콧물, 눈물 흘리며 울며불며 회개하는데 손에 전기가 파르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부흥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너무 평안합니다. 강 같은 평화가 내게 임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평화가 또 있을까?
18살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주님을 향한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눈만 뜨면 구원시킬 영혼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을 만나 그 자리에서 여호와 증인을 붙잡고 서로 침 튀기며 이야기했습니다.
무당집도 다니고, 절에도 찾아가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다 물매 맞을 위기도 여러 번 넘기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짝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 내용도 확 달라졌습니다. 성경구절을 항상 써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세상 철학에 몰두했습니다. 친구는 톨스토이의 글을 써서 보내고, 저는 하나님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장의자에 누워 굶주리며 장래문제를 놓고 밤을 새며 기도했습니다.
잠을 자나 안자나 거의 그렇게 청소년기와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교회에서 사찰집사님과 함께 바닥청소, 화장실 청소를 다 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당연히 철야를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했습니다. 소년 때부터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 하며 내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뺏길 수 없다며 기도했습니다.
편지로 왕래했던 친구가 저를 만나기 위해서는 교회에 와야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가 아침 9시부터 예배를 드려야 하니, 믿음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 친구가 변화되어 개척교회 재정집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는다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먹이사슬처럼 얽혀있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고 오픈할 때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아내를 구타하고 핍박하면 그 아내가 나를 사랑하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분이십니다. 내가 힘들고 지칠지라도 절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감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모두 보이지 않는 사슬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데 부모도 친구도 풀 수 없는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 사슬에 매인 우리가 죄수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사람과의 영적인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귀다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변덕을 부리는지 잘 알 것입니다.
잘 삐진다는 것은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반드시 믿음의 배우자가 필요하고 영적인 은혜를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먼저 화목하고 선을 행해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막히면 기도가 상달이 안 됩니다. 아무리 은혜가 충만해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정복전쟁을 벌여나갈 때 모세의 시종(侍從)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완전히 엎어져 100% 순종하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아론까지도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지만 여호수아는 평상시 순종함으로 인해 죄에서 벗어납니다.
여러분들이 특별한 은사를 받으려면 인간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술수를 부리면 머지않아 부작용이 생깁니다. 항상 하나님보다 오버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와 인내로 열매를 맺는데, 열매가 무르익기도 전에 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인내로 기다리면 열매를 수확할 때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무르익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고 믿음으로 알아보면 정확하게 나에게 올 기도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다가옵니다. 불필요하게 억지로 강요하면 그 응답은 후유증을 부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벌일 때 모세 밑에서 순종하는 것부터 먼저 배웠습니다. 그러자 모세의 능력이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전달됩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은밀한 훈련장소, 고난의 풀무에서 견딜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십니다.
요셉은 억울한 종살이하면서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웁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그때 배웁니다. 사람의 진면목이 고난 가운데 만들어집니다. 믿음은 만용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실질적으로 응답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 상황이 뒤바뀔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철저하게 실질적이어야 합니다. 기도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하지만, 내게 없는 필요한 것들도 구체적으로 구하는 현실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없으면 구해야 합니다. 믿음도 오늘을 살아갈 분량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3절을 보십시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구원이 떠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기도해야 할 일은 내일로 절대 미루지 마십시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철저히 사는 것이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높은 산봉우리를 단숨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올라갈 때 어느새 정상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처럼,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라는 복음전도자가 친구와 함께 히말라야 산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산 길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친구는 썬다싱에게 이 험한 산길을 혼자서 걸어가기에도 힘에 부치니 그냥 버려두고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썬다싱은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어 등에 업고 갑니다.
썬다싱이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산길을 오르자 힘은 들었지만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온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차갑게 얼어 죽어가던 그 사람도 몸에 온기가 돌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썬다싱과 등에 업힌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싸늘하게 죽은 친구의 사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길이 그대로 저승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썬다싱은 무사히 히말라야 산을 넘고 다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한 명이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붙들어 일으킬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투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80대 노인인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서 기도합니다. 이들이 두 손을 내리면 지게 됩니다.
그러나 피곤한 모세의 팔을 아론과 훌이 붙들어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못하게 하자 승리를 거둡니다. 이처럼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을 민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내 기도가 무기가 되고 병기가 되는 시간입니다.
전도서 10장 10절을 보면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합니다.
내 믿음이 무뎌지면 아무리 기도의 농사를 지어도 힘만 더 듭니다. 기도의 날을 날카롭게 갈아 일이 척척 잘 진행되도록 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로 내 무기를 날카롭게 단련시키고 좌절해서 넘어진 이웃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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