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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정리: 인정 중독 (2018. 9. 14 금) 조회수 : 87
  작성자 : holyfireLA 작성일 : 2018-09-18

---- 미국 LA주님의교회 조성지 목사님께서 밴드에 올리신 글입니다.----

(김용두 목사님 9.14() 설교 "인정 중독" 들으면서 너무 좋아서,  

   설교노트로 깔끔하게 정리 편집해보았습니다.)

중독성 증상 (Addiction symptom)

본문 : 욥기 23:1-17

중독성(Addiction) 증상은 그 역기능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극물을 얻기 위하여 강박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의학적 상태이다. 그것은 그러한 행동으로 이끄는 질병이나 생물학적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하여 중독(Poisoning)이란 독성을 가진 물질이 허용량을 넘어 체내에 들어가면서 생체의 정상적인 기능이 저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급성과 달리 만성 중독은 오랫동안 유해한 화학 물질이 체내에 축적되면서 서서히 일어나는 중독 현상인데, 겉으로 잘 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몸에 안 좋은 것을 반복해서 계속 섭취하게 되면 나중에는 끊기 힘든 습관으로 고착되어 중독성 증상이 나타나는데 마치 , 담배, 마약 중독같은 것이다.

우리는 신체의 중독 현상 뿐 아니라 이를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 영적, 혼적 중독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중독 증상은 누구나에게 다 있다.

중독 증상은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은사와 능력 받은 자들 중에서도, 목사와 장로 집사 지도자들 중에서도, 신앙의 연륜이 오래된 사람들,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들 중에서도 나타난다.

중독에는 교만의 중독, 미혹의 중독있고, 유명해지고 인정받고 싶은 중독이 있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집사인데 . 교회에 대한 소문, 사역에 대한 소문이 나기를 바라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은 것, 이게 다 중독이다.

자기 자신, 자기 주장, 자기 간증, 자기 믿음, 자기 경력, 자기 가정만 이야기 하는 것은 중독 증상이 심함을 나타낸다. 계속 자기 것만 이야기하니 보통 중독이 아니다.

욥기의 가장 큰 특징, 핵심은 회개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회개가 안 일어나니까 욥이 나중에는 눈물을 절절 흘리면서 깊은 회개를 한다.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의 소문을 이제는 내가 눈으로 봅니다.” (42:5) 욥은 환경을 통해서 처절하게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회개가 일어났다. 아무리 기도해도 회개가 안 되는데 마지막에 38장에서 41장 쭉 넘어가면서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나타나시고 화나셔서 질문을 던지신다. 욥아 너 중독이 상당히 많이 되었구나.

사실 욥에 대한 소문이 중독성 증상더 가중하였을 수도 있다. “우스 땅에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더라”(1), 동방의 최고 의인이더라고 불리며 주변에 다 명성이 자자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하실 정도였다. “네가 내 중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1:8, 2:3) 자녀들이 다 축복받고 악에서 떠난 의인으로 불리었다.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아브라함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동방에 또 다른 믿음의 사람 욥이 있었다. 이런 점을 보아도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만 이런 사역을 한다. 우리만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만 뜨겁다. 그게 아니라 지구 반대쪽에도 엄청난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또 있다. 다만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붙잡으셔서 혜성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 동안 기도 사역에만 집중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신앙, 정신, 육체 모두 다 해부해버리셨다. 완전히 마귀가 난도질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육체가 박살이 나고 정신이 완전히 깨어지고 영적으로 완전 밑바닥이 되도록 놔두셨다. 사탄은 자신의 역사에 욥이 타격을 많이 받을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충격을, 시험을 완전히 흡수해버린다.

사탄의 주장에 마치 하나님이 마귀에게 지시는 것처럼 행동하시지만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셨다.

욥의 자유 의지, 욥의 신앙의 선택, 욥의 내면에 깊숙이 묻혀 있을 수 있는 불신, 혼적인 기질, 육체적인 연약함, 혹시라도 섞여있을 수 있는 불순물, 욥의 가정과 자녀들, 재산, 욥의 친구들을 하나님은 모두 다 지켜보고 계신다.

그래도 당신이 하나님을 탓하지 않아?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그렇게 얻어맞고도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어.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다 사탄의 소리이다. 여러분 고난당한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이런 말 안하는 것이 좋다. 믿어요?

고난당할 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과 그 당사자 자신만이 해결해야 할 그 무언가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사탄이 그 입을 사용한다.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이 욥을 회***신다. 회개시킨다 하니까 어떤 사람은 거 봐 회개해야 한다니까하며 남을 쉽게 정죄하는데 이런 자들의 태도는 더욱 더 못되다. 남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당사자의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원인 분석을 할 때에 육하원칙으로 생각하지만 시험이 올 때에는 이런 육하원칙을 초월한다. 어떤 때는 이유를 모른다. 영문도 모르고 완전히 해부를 당한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와서 당신 문제는 이래서 그래 하면서 지적을 하거나 정죄 비판을 하면 우리는 이를 못 참고 분개하며 심지어는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없다, 자신은 의인이다는 중독 현상을 보인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집사인데, 내가 홀리화이어 미니스터인데, 내가 홀리화이어 매니아인데, 내가 지금까지 어떤 경력을 쌓았는데, 내가 누구인데 감히 나한테 이래 하면서 말이다. 이게 뭐예요? 내 안에 인정받고 싶은 중독이 있어서 그렇다. 이런 중독 증상 때문에 남이 나를 무시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화를 내면서 폭발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중독이 결국에는 죄로 간다. 따라해 보자. “중독은 죄로 갈 수 있다.”

목사님이 나에게 이런 예언을 해줬어.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착각하지 말자. 그건 죄이다. 주님이 나에게는 좋은 예언 다 해줬어. 이게 좋은 것인가? 신앙의 수준이 어리니까, 책망의 말씀을 하면 금방 낙심하니까 안하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조그마한 어린 얘기가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하는데 왜 그것 밖에 못해 하면서 때리면 어떻게 해? 잘 했다. 일어나라. 한 발짝 더 이렇게 칭찬하고 격려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한다. , 내가 잘해서 주님이 나에게는 계속 칭찬하시는 거야. 마치 어린 아기가 걷다가 넘어지려는 것 잡아주려고 하면 뿌리치면서 내가 해 하면서 의기양양한 것처럼 말이다. ,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역사하셨다. 나를 사용하셔서 역사하셨다. 이것도 중독 증세이다. 남에게 자랑하거나 남의 반응을 볼 필요가 없다. 같이 따라 해보자. “주님께서 다 하셨다.” 할렐루야~!

욥은 가정과 자녀, 물질의 축복 온갖 다 받는 축복의 구조 속에 있다가 마귀와 하나님의 몇 마디 대화 뒤에 한 순간에 온갖 누리던 것들이 다 무너져버리는 갈등 구조에 처하게 된다.

이 고난이 죄로 인해 그렇다는 친구들의 지적 앞에 욥은 계속 변호를 하며 자신이 죄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다 변호하며, 옳다 인정받고 싶은 중독 증세를 보이며 끝없는 갈등을 한다.

하나님도 고민하신다. 어디까지 내가 허락을 할까? 처음에는 재산만 허락했는데, 다음에는 가정의 파탄만 허락했는데, 육체의 고난을 허락했는데 어디까지 허락을 해야지 하나님도 걱정을 하신다. 자녀들의 죽음을 허락하셨지만 천국으로 인도하셨으니까 하나님께는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별한 은혜, 특별한 능력, 특별한 은사, 특별한 사역받으려고 무단히도 부러워하며 사모를 한다. 물론 그러한 것을 받는다면 정말 특별한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것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난이나 시험, 시행착오를 거친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모르니까 일반적인 진술만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당하시고 우리들에게는 믿는 자들의 권세와 선포하는 능력을 주셨잖아? 왜 그걸 사용 안 해? 마귀를 쫓아내면 되지 왜 그렇게 계속 공격만 받는 거야?

하나님의 영적인 영역 안에는 간단명료게 아니라 무척이나 복잡하고 섬세하고 다양한 구조가 있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과 비밀을 다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아는 지식, 경험, 일반적인 성경 상식을 가지고 다 안다고 생각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영적으로 깊이 못 몰아간다. 기본적인 말씀만 믿으라. 기록된 말씀, 로고스만 믿으면 된다고 한다. 복잡해지는 거 싫어한다.

성도들은 영적인 열심이 갈급하고 열정들이 꿈틀거리는데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이 그런 것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저 현실 위주로 자기 교회 위주로 간다.

구약의 말씀, 신약의 말씀, 성령의 시대에 계속 역사하시는 일들과 레마의 말씀이 추가가 되어야 하는데 추가 안 시킨다. 성도들이 너무 알면 안주하는 목회자들이 실상이 드러날까 봐 부담되기 때문이다.

사탄이 역사하면 욥이 경험한 것처럼 축복의 조건들이 한 순간에 악조건이 된다. 사탄이 역사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박살이 난다. 온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도 시원치 않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능력 받았다고 성령의 불 던진다고 전 세계로 다니는데 겉모습은 그렇지만 속으로 채울 것은 고난이고 시험의 연속이다. 아무나 이런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대우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난과 시험과 괴로움을 성숙으로 바꾸어야 한다.

같이 해보자. 성숙으로 바꾸어야 한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진정한 회개와 간절한 기도가 안 나온다. 평소에는 기도와 회개는 하지만 이런 간절함이 없었다.

욥은 지금까지 자기가 의인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성공하게 만들었고 성취감을 누렸다.

나는 성령 사역자다. 내가 맡으면 남들과 다르다. 내가 맡으면 더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를 돌아다닌다. 내 자식이 잘한다. 똑똑하다. 이런 것들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하지만 이게 다 아직도 내가 세상속한 것임을 보여준다. 중독 증상이다. 같이 따라하자.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에게 두 눈이 다 문제가 생기니 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육적인 두 눈은 우리가 7~80 인생 살면서 필요한 것이고, 진짜는 우리의 시각이 영적인 눈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이 내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도 안 되는 것이다. 아직도 내 안에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타락한 기질이 남아 있다. 비겁한 성품, 순수하지 못한 성품이 있음을 우리는 찾아내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사탄이 갈등 구조를 들춰내는데 욥은 이제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

하나님은 욥의 편인가? 친구의 편인가? 손들어보자.

하나님이 언제 욥 편을 드시었는가? 하나님이 욥을 먼저 회***었다.

폭풍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욥부터 다루시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

욥이 덜덜덜 떨면서 맨 정신으로 회개 못하고 티끌과 재를 뿌려가며 회개하였다(42:6). 욥이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게 가셔서 너희가 욥에게 가서 화해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 말씀하셨다.

왜 내 종 욥을 괴롭혔느냐?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했다.

친구들이 지금까지 욥에게 말로 이겨보려고 했다.

그러니 나 좀 내버려 둬, 나 지금껏 믿음으로 살았어, 영으로 살았어, 기도하며 살았어. 스스로 옳게 여겼다.

그래서 논쟁은 사탄이 역사하는 경우가 많다. 사탄이 안 떠나고 역사할 때는 서로 박살이 난다. 그럴 때는 그냥 조용히 당하는 것이 낫다. 친구들이 나중에 욥에게 와서 잘 못했다고 빌었다. 그러니까 성도들끼리는 서로 험담하거나 말로 논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도와 찬양 외에는 우리가 입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뭐가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게 많은가? 누구한테 거절당하면 내가 우울하잖아. 누구한테 무시당하면 성질이 폭발하잖아? 다 중독 증상을 보이는 거야.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너무 많다.

자 여러분, 육적으로 완전히 해부당하고, 정신적으로 박살이 나고, 영적인 부분까지 치고 들어오잖아?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이 해체되는 수준까지 가는 것 같다. 도대체 믿음의 세계는 무엇인가? 내가 아는 세계, 말씀을 붙잡는 거, 이 믿음의 정보가 깡그리 무너지고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일들은 생긴다.

하지만 욥은 갈등 구조 속에서 갈등은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욥 너는 과연 누구냐? 나는 과연 누구인가?

아직도 우리가 안전지대에 머물며 모험을 안 하려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진짜고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욥기를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천사들이 있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눈이 있고, 욥을 고발하는 사탄의 눈이 있고, 욥과 함께 평생을 함께 살았던 아내의 눈 아내의 시각이 있다. 또한 자녀들의 눈도 있다. 그리고 물질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고, 욥을 권면한 친구들의 눈도 있다. 그런데도 욥의 고난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을 깨어버리시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욥기를 읽은 우리는 욥기의 결론을 알고 있고 하나님과 욥의 관계가 회복되고 축복의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기에는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일이년 안에 되지 않고 우리는 속전속결을 바라지만 욥의 고난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이 쭉 지켜보고 계시고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이 역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떨어야 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어떤 시너지 효과를 원하신다. 기다림은 정말 어렵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자녀를 주시리라는 약속을 기다리는데 25년 걸렸다. 이것은 심리, 육적, 영적인 테스트이다. 육은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사라의 생산 능력도 끝난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데 하지만 알면서도 믿어야 한다. 왜냐? 이것이 믿음의 세계이므로. 안 되는 것 알면서도 하나님이 하라면 해야 한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도 안 되었지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면 던져야 한다. 이것은 육하원칙을 뛰어넘는 것이다. 자연환경과 이치를 뛰어넘고 육적, 혼적 차원의 세계를 뛰어넘어 영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파트너쉽이 만들어진다. 복의 근원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쉽게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는가?

치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고민을 많이 하며 오로지 영으로 살아야 한다. 따라 해보자. “쉽지 않다.” 하나님은 내가 알고 있는 믿음과 지식, 정보 깡그리 다 회수해 버리신다. 내가 경험 많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오히려 해가 된다. 하나님을 순종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내가 될 수 있고 내 생각, 내 마음, 내 정신, 내 혼이 될 수 있다. 내 영은 하나님 뜻대로 갈려는데 내 혼과 정신이 발목을 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을 통하여 새로운 믿음의 샘플 작업을 만들어 나가셨다. 할렐루야~! 우리가 아무리 경험 많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 분의 방법과 섭리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내 내면에 흐르는 갈등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새롭게 이끄실 줄로 믿는다. 여러분이 갈등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갈등을 구조화시키시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하신다. 내 속에 숨어있는 인정받고 싶은 중독, 자기 의의 중독을 하나님이 만져주셔서 치료해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능력 받고 새로운 믿음의 파트너로 축복 받기를 원하시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고난과 갈등 구조 속에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이끌어 가신다. 오늘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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