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도달하는 과정 | 조회수 : 1800 |
작성자 : 레베카 | 작성일 : 2014-02-18 |
2014. 2. 13
빌 3:8-15
빌립보서는 복음으로 인한 핍박으로 고난을 받아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쓴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었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흔적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항상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도달하기까지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무엇을 디딤돌로 해서 도약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영이 열어져서 천국을 다녀왔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천국은 은사를 통달해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 6:4-6)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은혜가 있지만 반면에 심판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나쁨의 도구가 되고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좋은면 좋을수록 하나님의 선하신 도구가 됩니다. 일반적인 지식도 많이 축척되면 강도높은 시험을 치룹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의 종류도 아는 것이 많을수록 고차원적인 시험이 옵니다. 거기에 걸맞는 시험들이 물밀듯이 옵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면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할 수 있는 시험이 옵니다.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어도 관리를 못하면 타락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 해도 우리가 사는 현실이 안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집을 지었는데 무너졌다면 그 사람은 집을 잘못지은 것입니다. 시험이 왔을 때 무너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얼른 돌이켜서 무너진 것에 대해서 통렬하게 회개히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끝나는 것은 없습니다. 수단과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번달 초에 중국 집회에 다녀왔는데 어떤 목사님이 첫날부터 엄청난 능력이 임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가장 최악의 열악한 상태에서 능력이 임했던 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이 열어질때까지 인내로 다가갔습니다. 이 과정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과정을 모르면 졸업이 안됩니다. 검정고시는 정규적인 수업을 거치지 않고 시험을 치루는데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혼자서 공부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과정을 모르고 뛰어넘을 생각으로 기도를 하신다면 교만으로 작용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밑바닥부터 훓고 지나가게 하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대도 시간을 두고서 알아가게 됩니다.
복음서에는 주님께서 사람을 만나실때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에 있는 우물가에 여인에게 말을 건네십니다(요 4장).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오는 여인에게 물 좀 달라 하시며 다가가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자마다 목이 마르겠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일반적인 이야기가 영적인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이윽고 우물가의 여인은 전도자가 되어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이끌고 옵니다. 구약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동안 연단을 발았고 감옥에서는 발이 착고에 차이기까지 고난을 받고 나중에는 하나님께 쓰임받았습니다. 이 도달하는 과정이 얼마나 귀한 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영적으로 성숙하고 깊어지면 더이상 유혹에 빠지지 않고 시험도 없고 흔들림 없는 상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땅에 발을 내딛고 사는 한 확실함과 안전성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해도 그에 비례해 지옥에 있는 영들이 풀어져서 은혜받는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미혹도 증가합니다. 하늘의 능력이 증가하면 지옥의 영들도 풀어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영적으로 발전한다 해도 예수님은 부분적으로 잠깐식 계시해 주십니다. 주님은 은혜받은 사람들에게 앞날에 대해 다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저도 집회를 마치면 주님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기질과 습관이 믿음을 이기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누르십시오 강력하게 기도의 능력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사모하고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수준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먼 곳을 여행을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에서부터 무엇을 준비하고 어디를 경유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낯선 곳에 간다면 대책도 없고 고생도 실컷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분명히 정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을때는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서 삽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다 내려놓고 새로운 목표가 정해집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이전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능력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능력의 말씀을 현실로 가지고 나와서 사용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령충만이 밑바탕에 깔려서 은혜를 사모하면서 선한 수단이 생기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점진적으로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사도바울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오직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더 기도하고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많은 능력이 있었고 영적인 체험을 많이 했지만 과거의 자랑을 다 잊어버리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쫓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더 잡혀야 합니다. 주님께 손목만 잡힌 사람이 있고 온 몸이 잡힌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지만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서져야 합니다. 아직도 주님께 드리지 못한 더럽고 추한 영역이 있습니까 이것을 부수어야 합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주님께 붙들려야 합니다. 물질에는 붙들렸는데 마음은 아닙니까 주님께 확실하게 붙잡혀야 주님이 마음껏 쓰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강하고 마음의 계획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사람보다 아무 때나 잡아서 쓸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아픔과 상처와 고난도 다 내려놓으십시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위해서 쫓아같던 바울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목표와 경유지를 향해 도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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