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 안엥서 자랑해야 할 것들 | 조회수 : 1740 |
작성자 : 레베카 | 작성일 : 2014-02-10 |
2014. 2. 2
고후 12:1-9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계시와 은사를 많이 받고 힘도 있고 목소리도 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흔히 우리가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숫자에 비례해서 얘기하거나 상상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엄청난 계시와 은혜와 능력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고난과 핍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는 학문적인 지식이 월등하게 많았습니다. 가장 정통적인 유대인이었고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도바울이었지만 자신의 육체적인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놀라운 것은 우리의 잘못과 무관하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짓기 전부터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를 많이 지었는데도 그분이 베푸시는 용서와 지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은혜속에서 살다보니까 선을 자꾸 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실수하고 죄짓고 넘어질 때 우리의 곁에서 도와주기 위해서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입니다.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려하는 것이 "자기 분투"입니다. 바을은 로마서신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싸워서 절제하고 참고 승리하려고 하는데도 잘 안됩니다. 육체의 법이 성령의 법과 싸웁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려고 하지만 육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좌절케합니다. 육체가 강건해지려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음식도 섭취하고 물을 마시고 운동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더욱더 도움받을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쳐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숨쑴어있는 뿌리깊은 부정적인 태도, 감정적인 성향, 이런 것들이 우리의 육체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몰아가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 안에서 찌들려 있습니다. 죄를 짓고 노출이 되면 죄는 결코 가만있지 않습니다. 세포가 분열하면 커지고 또다시 분열하고 커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죄가 그렇습니다. 죄는 사망을 이루기 때문에 장성합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 마음, 감정, 행동으로 짓는 죄 등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통해 의견 조율을 하면서 동조하게 만듭니다. 이런 죄의 뒷배경에는 항상 사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 먹은 대로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까 우리의 뜻대로 만된다면 세상은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압도하고 지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튀게 되어 있습니다. 샐러드에는 나름대로 고유의 독특한 향기가 있어서 드레싱을 통해 다양한 재료가 서로 배합하여 우리의 입으로 들어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고유한 성격이 있으면서도 여러 사람과 부딪치지 않으면서 조화가 이루어지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 가정, 교회, 사회 단체에도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할 수 없는 계시를 보았습니다. 바울은 몸이 너무 약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시기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서 죽은 것 같은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서 복음을 전합니다. 모든 것이 바울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자주 사단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아래 놓이게 되면 약점은 강하게 되고 강점은 하나님이 더 강력하게 다루셔서 하나님의 일을 할수 있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해서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약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경험하고 능력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은 어디 하나씩은 부셔놓으십니다.
사도바울은 눈에 안질이 있었습니다. 안질이 사단의 사자였습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영적 침체에 빠지고 슬펌프가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게 됩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 자신이 혼자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제 넘어지게 될 줄 모릅륿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12). 능력을 받고 삼층천을 경험한 바울에게 주님은 안전장치를 해놓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연약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안전장치입니다. 일이 풀어지지 않는 그것때문에 하나님께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고쳐 주시도록 세 번 간구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족하다고 하시며 바울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없는 모순된 진리가 있습니다. 이해가 안되는데도 진리입니다. 연약함이 어떻게 강점이 됩니까 인간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면 감추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고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서지고 깨지고 허물이 드러날때 기도하게 됩니다. 연단받는 것도 육체의 가시가 생기는 것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집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능력입니다. 능력은 강한 쪽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잡고 획득하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온 우주만물을 가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낮아지셔서 섬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가지고 있는 충분한 계시와 능력이 있지만 연약함을 터치하셔서 겸손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자혀면서 그분의 능력에 붙잡혀서 살아가는지가 정말로 능력입니다. 약함때문에 하나님께 엎드리는 은혜가 진짜 은혜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들과 대화중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입장에서는 맞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변화되는데 자꾸만 부딪치는 사람들을 주변에 심어놓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의견대립을 통해서 우리가 부서지고 깨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짜 능력은 부서지는 데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능력과 은사를 받고 사역을 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진짜 능력은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덜 성숙한 사람이 성숙하하기까지 참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실수와 허물이 드러나면 참습니다. 가정에서는 허물이 있어도 용서가 되지만 사회에서는 이런 것으로 서로에게 앙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학벌이 없습니까 가진 것이 없어서 가난합니까 육체적으로 약해서 누워 있습니까 아직 결혼하지 못해서 외롭습니까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없습니까 결손가정에서 태어났습니까 사람들앞에서 말을 잘 못합니까 우울증도 있고 정신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습니까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시고 연약한 부분이 자랑거리와 훈장이 되게 하시고 주님앞에 섰을때 면류관 상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단 약점을 가지고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어도 100%를 주시지 않고 얼만큼을 남겨두셨습니다. 그 연약함 떄문에 하나님께 붙어있어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놓고 기도하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들어가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움직이고 싶어하시지만 우리의 기질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것이 정말 많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서 교만하지 마시고 끝까지 주님께서 인도하신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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