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나님과의 동행/사 55-6-9/주일예배 2013. 6. 23 | 조회수 : 2107 |
작성자 : 레베카 | 작성일 : 2013-07-02 |
사 55:6-9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하시고 가까이 있을 때에 부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3가지가 있습니다.
우리와 보폭을 맞추심
첫 번째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를 구원시킬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많이 동참해서 상급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헌금하고 구제하는 것도 큰 상이 됩니다. 세 번째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여전히 충돌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끄시는데 우리는 선을 그어서 우리의 사생활이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어떤 분이신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걸음에 익숙해지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면 어린아이들과 보폭을 맞춥니다. 아이들과 같이 걷다가 차이가 벌어지면 가다가 뒤돌아보고 멈추다가 다시 걷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힘들어 보이면 안고 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힘들다고 하소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들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능력이 많으신 분께서 우리에게 보폭을 맞추십니다. 2인이 한 조가 돼서 경기를 하면 어른이 아이에게 보조를 맞추어서 경기가 진행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불편함을 감수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보폭을 맞추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걷지 못할 때 우리를 업고 걸어가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얼마든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참여하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장애물을 넘어서
내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려고 시도하면 사단이라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사단의 세력과 내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자아, 고집, 자존심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있습니다. 육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육신은 성령의 능력으로 통제로 다스려가야 합니다.
일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진행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면 마음이 좋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경험하였는지가 자신을
옭아매는 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고방식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서로 싸웁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경험하면서 쌓아올린 것, 관점과 경험의 차이를 가지고 대립하면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보 전진을 위해 이보 후퇴를 해야 합니다. 한 번 전진하기 위해서 열 번은
양보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식
본문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아무리 옳다 할지라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는 그 즉석에서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실망감, 서운함 그 자체가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너무 버겁고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어떻게 판단합니까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면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계신 것 같습니다. 기도응답을 받는 것에 따라 희비가 엇갈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삶에 방향이 길들여지다 보면 가는 길이 점점 넓어집니다.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코너로 몰릴때 때 감사하고 기뻐하면
좁은 길이 시온의 대로로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기도응답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응답의 방식을 스스로가 제한합니다. 그러다 응답이 안 오면 좌절합니다.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들이 기도합니다. 기도는 같이 했지만 당하는 시험은
서로 달랐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은혜를 받아도 받는 연단이 다 달랐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하였습니다(갈 2:20).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에는 십자가라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자들입니다(갈 5:24). 성령님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선물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대가로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는
삶
시험이 왔습니까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후 4:8). 답답함이 우리로 하여금 엎드려서 기도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고통이 우리에게서 점점 사라집니다. 답답하게 하고 갇혀있고 우겨쌈을 당하는 것이 영적인 세계, 은혜의 강물에 더 깊이 들어가게 만듭니다. 봉사할 수 있는 힘과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본성을 치유합니다. 우리의 기질, 인격, 정신, 육체는 다 치유 받아야 합니다.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거두시지 않는 것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내가 꼭 지켜야 할 법이 있고 예외적인 변수적인 룰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구원받고 성령령으로 거듭나고
사랑과 겸손은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예외적인 변수는 내 믿음, 성령의 능력, 치유, 기도, 능력, 응답을 을 받는 것에 있어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방정식에는 상수가 있고 변수가 있습니다. 어떤 수를 대입하는냐에 따라서 다양한 해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 위에 사랑과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사역자체가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돼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은사를 다 받았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끝까지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서 여호와를
알자는 말씀이 있습니다(호 6:3).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 주님 앞에 올 때에는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때를 기다리는 사람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아뢰고 주님 앞에 끝까지 기도해서 때를 단축시켜 주님이 역사하시도록 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성숙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신뢰가 싹터서 주님의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이 행복하고 좋습니다
이전글 :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자 / 행 1:2-14 / 주일에배 2013. 6. 16
다음글 : ***기도의 생명을 걸고***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