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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 정리 "욥의 고민"(2011년9월4일 주일) 조회수 : 1734
  작성자 : chamkkot 작성일 : 2011-09-29

< 욥기 1장 1절~12절 > 

욥이라는 사람이 엄청난 시험을 당한다.
그리고 그 시험은 점점 더 가중되었다. 

욥과 친구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말자고,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떠나자고 서로 약속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악을 행한다.
그런 그들의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욥에게는 대단한 열정이 있었다. 
그런 열정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욥의 친구들은 그냥 일반적인 친구들이 아니라, 신앙으로 똘똘 뭉친 신앙의 동지들, 신앙의 언약자들로서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은 누군가의 결심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결심과 헌신이 계속 있어야 많은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다.
내가 제대로 결심하고 헌신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물질을 벌어도 그 물질을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자기 가정을 위해서만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그 정도 수준의 물질밖에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 열정이 대단해야 한다.
내 가정만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니 물질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지혜와 지식을 구하며 믿음으로
밀고 나가면 쏟아부어 주신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물질을 주신다.
부지런하지 않거나 물질을 허탄한 데 쓰는 사람에게는 절대 물질을 주시지 않는다.
열정적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강력한 주님의 능력으로 물질을 끌어올 수 있는 열정도
있어야 한다.

욥의 가정은 부족한 것이 없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욥의 가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4절과 5절에 욥의 고민이 나온다.
욥의 가정, 자녀 ,물질 등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욥의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자녀가 아무리 잘나고 물질이 풍성하고 건강해도 욥은 불안했다.
자녀들이 생일잔치를 하고나면 혹 그들이 죄를 짓지 않았는지 불안했다.
그래서 자녀들을 다 불러모아 명수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아무리 고민하고 결심하고 노력해도 인간은 불안하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써도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욥이 할 수 있는 게 자녀들 명수대로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욥은 완벽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불안했다.

우리는 항상 영계와 접촉하고 있다.
영적인 세계는 우리 육신과 맞물려 있다.
물질계와 영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손바닥과 손등처럼 붙어있다.
그래서 육신을 통해 영계와 접촉하게 된다. 
우리 육체의 의식을 통해 영의 세계와 접촉한다. 
영계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평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보면 
어떤 영적인 세계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음란한 사람은 음란한 영에 속해서 날마다 음란한 생각을 하고, 음란한 마음을 먹고, 음란한 행실을 하고,
음란한 말을 하게 된다.
억울한 사람은 억울한 영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해도 항상 억울하고 분하다.
분노를 잘 하는 사람은 분노의 영에, 좌절을 잘 하는 사람은 좌절의 영에, 질투를 잘 하는 사람은
질투의 영에 지배되어 있다. 
어떤 영과 접촉할 때는 그 영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몸에 붙어있고 몸 안에 침투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나 계기, 혹은 특정 사람을 만나면 터져버려서 분노하고 좌절하고 질투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영계에 들어와 있다.
영적인 통로는 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의식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런 영계에 접촉하고 영계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그 영들이 우리에게
오게 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통해 의식의 통로가 열린다.
귀신의 말을 주님의 말로 듣게 되면 그 사람은 잘못되기 시작한다. 
눈과 귀와 손과 입을 통해서 우리 생각이 자극받고 의식이 형성된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항상 조심스럽게 들어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이 안 좋은 말을 할 때 귀를 잘 사용해야 한다.
말과 행동을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드러난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영들이 오게 된다.
생각과 마음을 도둑맞지 말자.

대부분의 영화는 악한 영들의 주입으로 만들어진다. 
영화감독이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악한 영들이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런 영화에 합당한 배우를 만나도록 
조장한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휴머니즘 영화라도 반드시 부작용을 일으키는 영들이 역사한다. 
이처럼 불필요한 상상은 사탄을 불러온다. 
건전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할 때 그에 관련된 영들이 온다.
책을 볼 때도 저자의 영적 상태나 경험, 즉, 영계에 접촉하게 된다.

따라서, 영을 불러오는 것은 모두 본인 책임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 마귀를 먹여살리는데 그걸 모르고 속는다.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주님 앞에 가면, 나는 너를 모른다, 지옥으로 가라, 고 하실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 너무 멋지게 느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느낌이 들거나 상상이 되면 과감하게 끊자.
과거의 죄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생생하다면, 그만큼 그 영이 나에게 빨리 오는 것이다.
사탄이 바로 내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은혜받았던 것을 생각하고 항상 말씀을 기억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영적 분위기가 달라진다.
주님을 사랑하고 신실하고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하나님의 기운이 함께해서
아름다워진다.
그런 공간에서는 믿음이 떨어진 사람도 은혜받고 회개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잘 관리하려면 내면이 복을 받아야 한다.

6절에서부터 욥의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비춰지고 있는지 나온다.
하나님께서 욥에 대한 모든 것을 마귀에게 물어보신다. 
욥의 믿음이나 욥이 받은 은혜, 축복에 대해 마귀에게 물어보신다.
하나님께서 마귀 앞에서 욥을 칭찬하셨기 때문에 욥의 가정에 불행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을 욥은 전혀 모르고 있다.
욥의 시험은 하나님 나라에서 계획된 시험이었지만, 정작 욥은 이것을 모른다는 게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탄 앞에서 욥의 신앙을 칭찬하시고 사탄의 생각을 물어보셨을까.
그것이 욥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생각을 물어보시니, 사탄이 욥을 물어뜯고 할퀴려고 혈안이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다루시고 마귀도 강력하게 역사할 수 있다.
물론, 결국 욥은 갑절의 복을 받게 되고, 우리는 그런 결과를 알고 있다.

사탄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고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고발자, 참소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마귀 앞에서 흠과 티가 없어야 한다.
죄를 많이 짓고 겉과 속이 다르면, 마귀가 하나님을 충동질한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셔서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니, 손을 떼시면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충동질하고 욥의 신앙을 공격한다. 
욥에게 자식도, 재산도 아무 것도 남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섬겨야 그 믿음이 진짜라고 하는 것이다. 
2장에서는 마귀가 욥의 육체까지 친다.
아무리 힘들고 가진 것이 없고 억울하고 괴로워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이 진짜라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보다 신앙의 기준이 훨씬 높다.
하나님의 고민이 시작된다. 
과연 욥이 합격할까, 다 빼앗겨도 욥은 나를 욕하지 않고 섬길까, 고민하시다가 욥의 신앙을 믿어보기로
작정하셨다.
마귀의 신앙기준을 욥이 통과할 줄로 믿고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시험에 노출되어 있다.
최고의 믿음은, 시험과 유혹 앞에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테스트받는 것이다.
고난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고난이나 사건 그 자체만 보는 것인데, 그러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게 되고 얼마 못 간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고난을 바라보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테스트다,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연단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시려고 재산이 하루 아침에 강탈당하고 자식까지 죽게 하셨겠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건, 사고 재난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일어난다. 
자신이 받는 고난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저주하거나 판단할 권리가 없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판단하면, 마귀가 찾아오는 통로를 열어주게 된다.
영적인 전쟁은 너무나 치열해서 그 과정 중에 다치는 사람이 많고, 건강이나 재산 등의 환경에도
큰 희생이 따를 수 있다.
영혼의 힘, 생각과 마음과 의지의 힘을 길러야 한다.
생각과 의지를 뺏겨서는 안 된다.
생각이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대적해야 한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영계를 다스리는 것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조심해야 한다.
시기, 질투, 원망, 불평, 짜증, 피곤, 자기연민, 자포자기, 서운함, 정죄 등을 통로로 마귀가 온다.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은 항상 영적인 전쟁터이다.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빛의 사자가 되어 어둠의 세력을 다 몰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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