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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 정리 "줄다리기"(2011년7월31일 주일) 조회수 : 1532
  작성자 : chamkkot 작성일 : 2011-09-14

<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

농부들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을 확실하게 믿고 씨앗을 뿌린다.
마찬가지로 육체를 위해서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지만, 성령을 위해서 심으면 육체를 통해
영생을 거두게 된다(갈 6:8). 
우리는 육체에 속해 있지만, 우리 안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영적인 실체가 있다.
이 영적인 실체를 인정하든 하지 않든,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마음과 생각과 의지가 연약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에게는 A와 B라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A와 B는 서로 성격이 달라서, 의지가 약한 친구를 A가 끌고 가려고 하면 B가 와서 끌고 가고,
B가 끌고 가려고 하면 A가 와서 끌고 간다.
그렇게 연약한 친구는 A와 B 사이에 끼어 왔다갔다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 쪽으로 가자니 저 쪽에서 가만 놔두지 않고, 저 쪽으로 가자니 다른 쪽에서 그냥두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신다.

우리 몸 안에는 아주 강력한 힘이 있는데, 그 힘은 우리가 죄를 짓는 쪽으로 가게 한다.
죄를 짓는 방향으로 계속 우리 육체를 충동질해서 육체가 기어이 죄를 짓게 해버린다.
죄에 한 번 노출되면 자기 몸의 가치가 떨어진다. 
19~21절에 나오는 죄들이 다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이런 죄를 거듭 반복해서 지으면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21).
아무리 믿음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해도, 죄에 한 번 노출되면 자신의 영적인 가치가 확 떨어져 버린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육체가 너무나 강해서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
결국 정욕 때문에 육체와 영혼이 망하게 된다. 
육체를 통해 기어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때문에, 영혼까지 영향을 받아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는 사람을 노예로 팔아버리기 위해 끝까지 추적해서 기어이 잡는 노예상인과도 같다.
이런 육체의 요구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이원론에서 나온 영지주의 이단은,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아름답게 보시고, 하나님의 일에 육체를 선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몸 안에는 죄의 성품과 기질이 있다.
이 죄된 성품과 기질을 누르고 육체를 바르게 잘 사용하기만 하면, 우리 몸은 하나님의 멋진 도구가
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서로를 섬기면 육체를 통해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해도 육체의 요구가 너무 강해서 무너졌다.
복음을 통해 얻은 자유 때문에 죄를 더 많이 짓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율법으로 돌아가 버렸다.
율법으로 돌아가서 보니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형편없이 어설프고 철저하지 못했다.
율법이 경건한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율법으로 돌아가 버렸고 율법대로 하지 않으면
정죄하기 시작했다.

복음으로 자유케 되었다고 하니까 교회가 방종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자기 양심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래도 율법의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율법은 죄를 억누르는 능력이 있어서 약간의 도움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

육신과 율법과 성령의 능력 사이에 삼파전이 일어난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존재이다.
육체로 죄를 지으면 시장에 내다파는 고기만도 못하게 되는데, 육체를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최고의 걸작품이 된다.
육체는 마치 자석처럼, 성령님이든 죄든 어느 한 쪽 방향으로 계속 끌린다.
율법은 육체가 죄를 지으면 너는 죽어야 한다고, 너는 죄인이라고 정죄한다.
정죄가 끝난 다음에는 심판해 버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님이 계신다.
썩어질 육체를 통해서 지옥갈 죄들이 나오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만 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육체나 율법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인 은혜의 단계로
갈 수 있게 해주신다. 
은혜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은총, 특별계시가 필요하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 윤리, 도덕, 양심 등은 일반적인 은총인데, 그것들만 잘 지키고 살아도
세상은 큰 탈 없이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한 선물,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 은혜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의 영이신 성령님을 부으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 육체를 고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고 입술을 바꾸시고 행동을 바꾸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빨리 깨닫고 그 쪽으로 움직이면 되는데 우리는 멀리 돌아가기 일쑤다.
육체가, 육체를 통해 나오는 죄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자기 멋대로 하려는 아주 강한 성향이 있어서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된다.

율법의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죄와 정반대 방향으로 이끌고 가신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일반적인 양심뿐만 아니라, 선한 양심, 신앙양심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경고를 거듭 무시하게 되면 양심에 화인을 맞게 되고,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성령님의 역사로 고난을 많이 당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몸을 바치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서 내 몸을 바치려고 하면 이미 많이 늦어버린다. 

성령님께서는 억지로 우리를 잡아당기시지 않는다.
만약 성령님께서 고무줄을 당기듯 우리를 억지로 이끄신다면 우리 몸은 부숴지고 박살날 것이다.
믿음으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자발적으로 믿음으로 살게 된다. 
순종하라가 아니라 순종하게 만드는 것, 말씀대로 살라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게 만드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다. 
하라, 하지 마라보다는, 그가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게 해야 한다.
자원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게 이끄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지각을 새롭게 하셔서 새롭게 생각하도록 하신다.
전에는 죄인 줄 몰랐는데 죄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신다.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알고 그 자리에서 끊게 하신다.
죄가 아름답거나 멋있게 보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절대 죄에서 떠나지 못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자주 짓는 그 죄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다가, 죄에 무뎌져서 죄를 더 지어버리기도 한다.

우리 몸은 죄를 짓기에는 너무 거룩하고 가치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되어있는 존귀한 존재이고, 성령님께서는 우리 몸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
기도해도 자꾸 다른 사람과 티격태격 부딪치는 것은, 아직 성령님께 사로잡히지 않았고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아서다.
영안이 열려 뭔가를 반짝 본다고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항상 충만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생각과 마음도, 말도 행동도 바뀌어야 성령의 열매가 맺혀진다.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있는데, 인간의 자연적인 성품이나 기질에서는 성령의 열매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성령의 열매와 비슷한 것이 나올 수는 있지만 성령의 열매와는 다르다.

"사랑" 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분노하게 해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상대방의 그 어떤 모습에도 상관없이 그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희락" 은 기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생기는 기쁨이다.
속상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겨도 기뻐하는 것이다.
"화평" 은 다른 사람과 적대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야기가 잘 통하고, 누구든 나에게 다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영원히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 상대방이 나를 욕하고 저주해도 그와 다퉈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섬겨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화평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이해하는 그런 마음이어야 기도가 잘 되고 성령님이 좋아하신다. 
믿음의 자신과 여유가 있고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절대 남을 공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이유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묵묵히 다 받아들이는 스폰지가 되어 버려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을 공격해서라도 자신을 지키고 변호하려는 것이다.
공격을 포기하자.
사랑, 희락, 화평, 세 가지만 우리 안에 있어도 성령님께서 엄청난 일을 하신다.

"오래참음" 은 상대방을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자비" 는 모든 사람에게 신사적인 것이다.
"양선" 은 자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일종의 "구제" 라고도
할 수 있다.
물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지 않고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서로 하기 싫어 다툴 때 떠벌리지 않고 조용히 섬기는 것이다.
양선의 열매가 맺힌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아야 한다.

"충성, 온유, 절제" 이 세 가지 열매는, 목표물을 확실하게 정해놓고 화살처럼 날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열매들이다.

"충성" 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일관되게 충성하는 것이다.
자기 비전, 목표, 목적이 뭔지 알아야 거기에 맞게 화살을 날릴 수 있다.
충성하는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방황하지 않는다. 
이것을 하다 안 되면 저것을 하고 그러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자기 일을 찾아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온유" 는 때, 시기와 관계된다.
아무리 의욕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 때까지 버티고 기다려야 한다.
기도를 많이 해도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본다. 
예수님께서도 때를 기다리셨다.
삼십 세쯤 되셔서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삼 년 반 동안 쉴 새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일어나야 한다.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진짜 현명한 사람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잘 훈련시킨다.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들어쓰실 때를 위해 준비한다.
응답의 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절제" 는 주님의 뜻을 성취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항상 대기 상태여야 한다.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항상 충만한 상태로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피곤도 싫증도 다 이길 준비를 해야 한다.
롱런하기 위해 참고 견디며, 합당하게 나를 준비하는 것이 절제다. 
율법으로는 이런 것을 흉내낼 수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

주님, 제 안에 선한 것이 없습니다.
저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과 행동에 성령님의 능력이 임해서, 천사와 같은 봉사와 헌신이 있게 하소서.
육체를 잘 사용하게 하시고, 제 안에 선한 역사를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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