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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정리: 사랑의 수고 (살전 1:3)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 #2) 조회수 : 19
  작성자 : holyfireLA 작성일 : 2017-11-20

사랑의 수고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 #2)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3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 시리즈 두 번째,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른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 듣고 정말 감사한 것은 복음 즉 기쁜 소식이 우리를 해방시켰다. 구약에서 내려오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율법에서 우리가 완전히 자유해졌다. 이것은 쉽고 간단한 말로 해방되었다라고 표현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모두 따라합시다. “그러나 율법은 여전히 살아있다.”

율법은 지금까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율법의 특징은 죄이다, 죄가 아니다를 알려준다,

율법은 행동을 강력히 요구한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십일조를 해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지 말라. 하라.

율법의 요구는 계속해서 나에게 뭔가 행동을 요구한다.

행동을 너무 요구하면 우리는 못산다.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하나 하고 나면 이거 해야지, 하고 나면 또 이거 해야지 계속 요구하니 할 게 너무나 많다.

나의 손녀 사랑이도 2층 자기 집에 올라가면 계속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할 게 너무 많으니 자기 집에 안 가고 1층에서 할아버지와 같이 있기를 원한다.

나는 이거저거 안 시키잖아요. 나는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업어주고 사랑을 표현해준다.

사랑아 유치원 가자. 갈 때 업어서 데려다 줄게.

손자 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시켜셨다. 할렐루야.

주님께서는 율법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단번에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셨다.

우리가 율법으로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아들아 저들은 율법으로 안 되더라. 네가 가서 율법을 완성시켜라.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목적을 가지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죄에서 구원하려고 오셨고,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오셨고, 성령의 불을 던지러 오셨고,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

율법의 일을 완성시키시기 위해 오셨다.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키셨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에게 가져오신 것은 복음이다. 새로운 소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살아서 우리에게 계속 뭔가를 요구한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우리가 살인해요? 안하잖아요.

간음해요?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린 안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율법보다 더 무서운 것을 가지고 오셨다.

우리 착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 복음은 은혜예요. 은혜.

은혜는 카리스, 헬라어로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할렐루야!

근데 복음은 율법보다 더 무섭다.

살인은 안 하지만 남을 미워하면 그 사람은 살인죄를 지은 것과 똑같다.

간음하지 말라. 예수님은 음욕을 품은 자마다 다 간음했다 하셨다.

주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부터 미리 다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것을 꼭 명심하세요.

율법은 행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복음은 단지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요구한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존재함이란 말이 그냥 가만히 있으란 뜻은 아니다.

은혜 속에 있다고 해서 우리 행동이나 순종이 없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더 두려운 것은 율법보다 더 무서운 것을 주님은 가지고 오셨다.

율법은 왠지 무거워 보이고, 은혜는 그저 쉬워 보이며, 껍데기는 자유스럽게 보인다.

은혜는 자유다, 내 맘대로 이다.

주일날 나가서 먹고 놀고, 십일조 떼어먹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여러분 그건 아닙니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에요.

목회자들이 잘 못 이해하고 잘 못 가르치니까 그렇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이 복음이고, 복음의 자유이고 은혜이다.

이제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죄다.

감동 받았어. 은혜 받았어. 봉사를 해야 할 곳, 청소를 해야 할 것이 내 눈에 보였어. 아무도 하지 않네. 그런데 피하면 죄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뭔가 느껴지고, 깨달아 지고, 알게 되었는데도 하지 않고 피하면 죄가 된다.

따라합시다. “은혜 받으면 모든 것이 죄로 보인다.”

그래서 주님 앞에 가까이 가면 자신의 죄가 보이고 깨달아져서 그저 죽여 달라 잘못했습니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 속에 있으니까 율법은 없어지고, 복음이 있으니까 순종 안 해도 된다는 이런 사고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봉사 안 해도 돼. 충성 안 해도 돼. 십일조 안 해도 돼. 내 맘대로 막 산다.

사실 은혜는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다.

씨나 열매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다 더럽다.

그런데 은혜, 복음의 본질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동반된다. 할렐루야.

우리가 주님 믿으면 능력이 오잖아요, 할렐루야.

내가 안 해도 되고, 또 한다고 해서 그 율법의 요구를 충분히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만약 내게 나타나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 기도의 은혜, 은사의 능력이 함께 하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누가 뭐해라 하고 요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지, 그거 내가 할 수 있어요,) 자원하고 봉사하게 된다. 할렐루야.

행할 수 있는데 강제성이 아니라 스스로 믿음으로 자발적으로 은혜 받아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계속 요구한다.

그러나 은혜는 하나님이 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그 차이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를 말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 손녀 사랑이를 보면 나를 닮은 것이 너무나 많다.

찬양이는 눈이 옆으로 찢어져서 나를 닮은 것 같다.

태양이는 머리가 훌러덩 까져서 나를 더 닮은 것 같다.

내가 1시간만 같이 놀아줘도 자기 부모한테 안 갈려고 한다.

위에 올라가면 율법이 기다리고 있어.

사랑아 기저귀 갖고 와라. 동생 똥 샀다. 이거해라 저거 해라. 그러니까 스트레스 받는다.

율법의 스트레스 받는 것 밖에 없다.

1층에 내려오면 할아버지가 재미있게 놀아준다.

2층에는 부모가 엄하게 훈계하고 어서 해라 빨리 해라 요구한다.

사랑의 분량이 다르다.

2층에는 율법이 살아있다. 1층에는 자유가 있어요. 성령의 자유. 복음의 자유라니까.

주님이 오신 목적도 이거 아니예요?

여러분, 율법은 엄한 행동을 요구하는데 복음은 사랑이 본 바탕에 깔려 있어요.

은혜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할렐루야.

은혜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이것이 뭐예요? 사랑의 수고.

철이 들 때까지 사랑을 자꾸 줘야 해요. 자꾸.

사랑의 수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니까 함께 - 기도할 때도 함께, 봉사할 때도 함께, 음식을 만들 때에도 함께, 쓰레기 청소를 할 때에도 함께, 화장실 청소할 때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니까 수고스럽지만 함께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화장실 청소할 때 혼자서 더러운 것 치운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이 오셔서 함께 치운다고 생각해보셔요? 그 느낌이 어떨지? 주님이 함께 하신다니까요? 그런 일에.

헌금을 드릴 때에도 함께.

한번은 내가 청년 때에 헌금을 드린 때 일어난 일이다. 청년 때는 내가 항상 왼쪽 주머니에는 5000원짜리, 오른쪽에는 1000원짜리, 뒤쪽 주머니에는 10000원짜리를 넣고 다녔다. 당시는 십일조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항상 미리 봉투에 준비했는데, 주일헌금은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냥 주머니에서 당일 꺼내 드린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순간적으로 혼선이 되어 뒤쪽 주머니에서 꺼냈는데 10000원짜리가 10장 접혀서 100,000원이 있는 것이었다. 막 꺼내 손에 들었는데 헌금 위원이 내 앞에 동시에 와있게 되었다. , 이거 다시 넣기는 난감하였다. 이거 해야 되어요, 안해야 되어요?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으세요? 없으시다면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딱 꺼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거야. 당시 버스요금이 토큰 하나(*1990년대 약 290)고 용돈이 거기 다 들어있었다, 부르르 떨면서 주님 어찌하여 이런 시험을 주시나이까? 내가 실수 했다니까요? 다시 집어넣을 철판 얼굴이 안되어서 그냥 헌금으로 드렸다. 딱 넣고 나니까 평생 주일헌금을 10만원 한번 해봤다. 다시는 뒤에 돈 넣지 말아야지. 그 뒤로 부턴 뒷주머니에 절대로 돈 안 넣고 토요일 미리 미리 헌금 준비 다 해둔다. 헷갈리지 않게.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순간순간마다 함께 하십니다.

,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여러분 아시죠?

율법이 구약에서 내려 온 하나님의 말씀이면, 복음,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함께 해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거예요. 할렐루야.

율법은 여전히 살아있어요. 구약의 십계명 살아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니까 구약의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 차원에서 다 지켜지는 것이다. 지키는데 힘이 안 들어요. 할렐루야.

?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이제 내가 남을 미워하지 않아. 주님이 나와 함께 하니까.

간음하지 않아.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간음할 필요가 없죠. 주님의 사랑이 나와 함께 하니까.

구약에서는 행동을 말하지만 신약에서는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음욕을 품은 것 자체가 간음이다.

자 그러면, 복음이란, 은혜에는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

주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할렐루야.

복음과 은혜가 유지되는 과정, 방법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복음이란 은혜가 내 안에서 잘 유지된다. 할렐루야.

그럼, 겸손과 온유한 마음은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어요? 다시 율법이 되는 거다. 율법으로 무거워져서 스트레스 받게 된다.

그러니까 겸손히 하나님 말씀을 받아야 되고 대화할 때나, 봉사할 때, 주님의 일을 할 때 항상 부드럽고 은혜롭고 사랑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근데 봉사할 때, 왜 그랬어, 누가 그랬어? 누가 화장실을 이 따위로 더럽게 해놓았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 복음, 은혜가 지배하지 않는 사람이어요. 아직도 혈기가 남아 있어요.

그 사람이 기도 많이 하고 영이 열어져도 소용없어요.

그런 사람이 나중에 목회자가 된다. 사람을 죽이고 상처를 주어요. 안 된다.

그러니까 율법을 수행할 때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안 부딪히셨다. 할렐루야.

율법적인 유대인들이 막 들고 일어날 때 피해 다니시고 때로는 도망 다니셨다.

, 주님의 겸손과 사랑을 아직 이해할 수 없으니까.

따라합시다. “부드러워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강력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 주님 보세요. 부드럽고 겸손하면서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까 기름 부어지고 임재가 있으니까 주님 만나는 사람마다 다 변화가 되어버렸다. 할렐루야.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아도 주님은 역사하시는 거야.

예수님은 불가능한 것을 사랑의 수고를 통하여서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다.

따라합시다. “사랑에는 부드러움과 수고가 생명이다.” 할렐루야.

사랑에는 부드러움과 겸손과 낮아짐과 수고가 능력이다.

능력이란 능력 받아라, 그저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고 주님에게서 나오는 인격과 겸손과 낮아짐과 자기 몸을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이고 이것이 능력이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다. 다른 방법 없다.

내가 영으로 회심하고 거듭나는 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회복시키시고 있다.

우리 모두다 사랑의 수고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게 하십니다.

, 여러분 복음의 핵심,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이제 아시겠죠? 율법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복음의 은혜로 이해하고, 사랑의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삶 가운데서 나타내고 체험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멘.)

(정리: 조성지 목사, 미주주님의교회, LA 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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